‘신데렐라’ 효숙 역을 맡은 서우(왼쪽)와 ‘신데렐라 언니’ 은조 역의 문근영. 사진=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경쟁이 치열한 수목극 신작 중에서 단연 산뜻한 출발을 보인 드라마가 있다. 착한 이미지로 알려진 배우 문근영이 악역을 맡는다는 것도 화제였지만,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신데렐라 언니'다.
흔히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때는 신데렐라 이야기 중의 결론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투성이로 보잘 것 없던 그녀가 어느 날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끝. 그러나 사실 신데렐라는 그보다 좀 더 긴 이야기이고, 신데렐라와 왕자님 말고도 다른 등장인물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신데렐라의 언니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신데렐라의 언니에 대해 신데렐라를 못살게 굴고 신데렐라보다 발이 크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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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에 갇혀 미칠 수밖에 없었던 앙투아네트
그런 면에서 신데렐라의 언니는 소설 '제인에어'에 나오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 닮았다 그 여자는 단지 제인에어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녀는 제인에어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였고, 한때나마 남자주인공 로체스터를 떠나게 만들고, 마지막까지 로체스터를 불구로 만드는 존재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다락방에 갇혔을까, 그녀는 왜 미친 걸까. 지인라이스의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다락방에 갇혀있던 로체스터의 미친 부인, 버사 메이슨을 주인공으로 삼아 새로운 시각에서 고전을 재해석한다.
“예전 모습은 잊어주세요” 문근영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180도 변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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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내러티브에서 멋진 영국신사 로체스터는 나고 자란 문화가 다른 부인을 영국의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적인 기준에 맞추어 미친 여자로 몰고 가는 파렴치한 남자다. 불길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불과하던 앙투아네트는 드디어 제 이름을 찾는다. 작가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가부장제뿐 아니라 제인에어에 스며있는 제국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기존의 지배적인 내러티브에서 무시되거나 주변화됐던 인물들에 새로운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 새로운 내러티브를 통해 기존에 당연시 되던 것, 질문되지 않던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 새로운 내러티브 부여받은 계모와 신데렐라 언니
그런 면에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시작은 참신하다. 신데렐라인 효선(서우 분)은 착하고 예쁘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없는 아가씨로 그려지고, 신데렐라의 언니인 은조(문근영)는 삶의 고단함에 지쳐 까칠해진 소녀다.
은조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효율화 시켰다. 지금 가출해봐야 소용없으니 가출은 하지 않는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고, 공부할 수 있을 때 공부한다. 주변사람들과 정을 나누어보았자 어차피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니 투입대비 산출이 불확실한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은조는 자신의 삶을 버티는 것 외에는 어디에건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효선이 은조와 친해지고 싶어 해도 은조는 그런 것 모두 피곤하고 짜증날 뿐이다. 누가 은조에게 그래도 스쳐지나가는 사람 모두를 다정하게 대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은조는 원래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듯이 까칠하고 못된 언니이지만 그 못됨에 대한 나름의 내러티브를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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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의 계모 강숙(이미숙)은 혼인신고 후 ‘나이 마흔에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됐다’며 눈물 흘리는 등 ‘이해되는 악역’으로 그려진다. ‘신데렐라 언니’ 중 한 장면.
신데렐라의 계모인 강숙(이미숙)도 내러티브를 부여받는다. 혼인신고서를 받아들고 '나이 마흔에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짓는 강숙은 원조 신데렐라와는 달리 '남편 잡아먹을 상'이라 폄하되지만 본인은 기존의 질서에 편입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인물이다. 먹고 살 방도도 없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얹혀 고단하게 살다가 드디어 왕자님을 만나 번듯한 술도가의 안주인이 되니, 역설적이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는 오히려 강숙이 신데렐라인 셈이다.
비록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연극이기는 하지만 강숙은 친딸 은조보다 효선에게 더 살갑게 대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의 계모도 신데렐라를 구박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친딸이라 하여 살갑게 챙기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던 엄마였으니, 정말 효선이를 '친딸같이' 대해주는 것이 효선에게는 더 괴로운 일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널리 알려진 고전 등장인물에 대해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 캐릭터를 통해 기존의 내러티브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신데렐라 언니'의 연출자는 이미 효선을 통한 반전을 예고한 바 있다. 신데렐라의 언니도 신데렐라처럼 왕자님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기를. 새로운 내러티브를 기대해본다.
박지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