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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편지/진주현]요지경 같은 美의료보험

입력 | 2010-02-25 03:00:00


작년 말에 머리가 아파서 학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자면서 학생 보험이 있으면 보험 회사에서 진료비를 모두 부담한다고 했다. CT를 했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 날 병원비 청구서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CT 비용으로 5300달러,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60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다행히도 보험 회사에 전화를 해 문제를 해결했고 예상대로 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없었다.

몇 년 전에 안과에서 정밀 시력 검사를 받았는데 그때도 행정 착오로 병원비 청구서를 받았다. 이번보다 훨씬 저렴한(?) 780달러, 우리 돈으로 85만 원 정도였다. 최신 의료기술의 도입 등으로 의료비용이 높아진다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은 진료비 외에도 보험 처리에 들어가는 행정 사무 관련 비용에다가 제약회사 보험회사 의료기회사, 그리고 의사의 이권까지 얽히는 바람에 비용이 점점 더 비싸져서 문제라고 한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생 보험을 갖고 있어 아프면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치통이 생겨서 치과에 전화를 했더니 내가 가진 의료보험에 치과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단 치과 보험을 사고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하는 데 약 두 달 걸린다고 했다. 집 떠나 어디가 아픈 것만으로도 서글펐는데 두 달을 기다리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몸이 아프면 아픈 부위와 상관없이 전국 어느 병원에나 들어가기만 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한국에서 갓 유학 온 나에게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그야말로 미스터리요, 골칫거리였다.

몇 년이 지나 겨우 학교 보험에 익숙해질 무렵 학교를 옮기게 됐다. 예전 학교에서는 대학원생이면 무조건 학교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이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원생 중에서도 조교를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따로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과 보험 회사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설령 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더라도 내가 직접 보험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지 않으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원생 조교를 하던 첫 두 해 동안은 그나마 혜택이 좋은 보험을 갖고 있어 불편함이 없이 지냈다. 이번 학기에는 조교를 하지 않아 보험이 바뀌면서 문제가 생겼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시력교정술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미국에 돌아가면 한 달 후에 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보험이 있어 당연히 안과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내 보험은 눈에 질병이 생겼을 때에만 적용되므로 정기검진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인 친구의 일화가 떠올랐다. 밤에 많이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한다. 직장의료보험의 보장 범위가 넓어서 응급실 진료를 모두 커버하기에 걱정 없이 다녀왔는데 문제는 몇 달 후에 날아든 의료비 청구서였다. 수백 달러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험 약관에 응급실 진료비는 100% 보장된다고 돼 있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고 한다. 보험회사와 병원, 직장을 오가며 알아본 결과는 이랬다. 응급실에 있는 집기 즉 침대나 주사기는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응급실에 있는 의사에 대해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을 따로 내야 한다는 것.

나는 사실 의료보험제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 미국의 시스템도 우리나라의 시스템도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겠거니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황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의료보험제도의 개혁을 추진하는지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진주현 재미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