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여덟 종목 중 메달의 주인공이 가려진 건 남자 1500m 뿐입니다. 아직 한국 쇼트트랙의 금메달 레이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뉴스메이커’ 김연아가 밴쿠버에 도착하려면 사흘이나 더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밴쿠버올림픽을 취재하러 온 한국 기자들은 벌써부터 잠이 부족합니다. 올림픽이 불과 닷새 전에 개막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이유는 아마도 아실 겁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기적 때문입니다. 모두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확신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모태범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자 5000m에서 이승훈의 선전을 기대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은메달을 딸 줄은 몰랐습니다. 여자 500m에서 이상화의 첫 메달을 예상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서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이 놀라고, 아시아가 놀라고, 세계가 놀랐습니다. 기자들의 손놀림은 점점 더 빨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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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미디어센터(MMC)에 앉아 한국 선수들 찬가를 쓰고 있을 때도, 틈틈이 낯선 외신 기자들의 방문을 받아야 합니다.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가 누구인지, 그리고 한국은 왜 세계 빙상의 판도를 바꿀 만큼 달라진 건지, 우리보다 더 그들이 궁금해 합니다.
그래도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렇습니다. 그들의 잦은 질문이 별로 귀찮지 않습니다. 일찍 일어나 늦게 자는 고된 하루하루가 꽤 견딜만 합니다. 일할 맛이 난다는 말, 바로 이런 때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이상화는 말했습니다. “그동안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에 밀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도 그 못지않게 열심히 운동했다는 걸 보여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서럽기도 했어요. 우리가 아무리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와도 늘 김연아 선수에게 묻혔으니까요.”
이승훈을 예상 못했고, 모태범을 못 알아봤으며, 이상화를 서럽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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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캐나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