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 ‘왕자, 호동’의 프레스콜. 호동왕자(이동훈)와 낙랑공주(김지영)의 설화를 서양 무용인 발레로 녹였다. 사진 제공 국립발레단
전 2막으로 나뉜 무대는 첫 장부터 낙랑과 고구려의 전쟁을 표현한 군무로 객석을 압도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용수 28명으로 표현한 스펙터클한 전쟁 장면에서 무용수들의 깔끔한 기량과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 돋보였다. 낙랑국의 사냥 장면에서 5명이 칼춤과 활 춤을 추는 장면은 전통무예와 발레가 고루 섞여 갈채를 이끌어냈다.
1막 전쟁 장면에 이어지는 2막은 호동과 낙랑의 사랑이 주요 테마다. 결혼식 장면에서 선보인 위구르족 한족 등 다양한 민족의 축하 춤이나 침실에서 호동과 낙랑이 사랑을 표현하는 농염한 몸짓이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신선희 감독이 연출한 무대는 배경을 장식한 직물이나 계단만으로 웅장함을 표현해냈다. 한편 서양 클래식과 전통음악이 혼합된 음악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지만 이따금 발레 동작과 정밀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줬다.
사랑을 나눈 후 떠나는 호동 뒤에서 낙랑이 옷을 덮어주며 껴안는 장면이나 자명고를 찢으라는 호동의 당부가 적힌 커다란 천 편지를 온몸에 휘두른 채 오열하는 모습도 관객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사랑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나쁜 남자’ 호동이 낙랑을 따라죽으며 갑자기 ‘로맨티시스트’가 되는 장면은 이 복잡한 감정의 선들을 갑자기 생략해버리는 느낌이었다. 호동 내면의 번민이 더 세심하게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발레 ‘왕자호동’ 프레스콜
▲문화부 염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