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스틸컷.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TV 화면을 바라보던 대통령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당첨금 244억 원의 월드컵 로또에 당첨된 것. 그러나 환희도 잠시, 대통령은 고민에 휩싸인다. 얼마 전 TV에 출연해 "로또에 당첨된다면 국민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당첨금을 어찌할지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3주 째 흥행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이다. 이순재 고두심 장동건 등 유명배우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나오는 이 옴니버스 영화 속의 대통령에겐 절대권력, 독재, 암투, 배신, 몰락 같은 어두운 이미지는 없다. 대신 '사람'의 얼굴을 한 평범한 대통령들이 '행복'을 얘기한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스틸컷. 사진 제공 필름마케팅 비단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지난달 28일 개봉 이래 관객 230만 명을 동원했다. 9월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연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승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토론을 벌인다는 연극 '박통노통'과 대통령 암살범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어쌔신'이 올랐다. 출판계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성공과 좌절',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박정희 한국의 탄생' 등이 출간돼 판매순위 베스트 20위 안에 들었다.
● 풍자보다는 긍정
올 하반기 쏟아진 작품들의 특징은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적극적인 평가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절대권력에 대한 비유나 풍자로 채워져 있던 것과 다른 분위기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스틸컷
연극 '박통노통'은 논쟁을 벌이던 박정희,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결국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서적 '박정희 한국의 탄생' '성공과 좌절' 등도 각각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반박하고 있다.
● 두 대통령 서거 + 박정희 서거 30주년 겹친 효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저엔 올들어 대통령 서거를 두차례 겪은 시기적 요인, 그리고 불행한 지도자를 보는데 지친 심리적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일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서거와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년이라는 시기가 겹치면서 동정론과 재평가 움직임이 맞물린 것 같다"고 말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불행한 대통령들을 연이어 보다보니 이제는 인간적이고 행복한 대통령을 보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며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그러한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분석했다.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