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희(왼쪽 사진 가운데)는 수상스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아버지 지영기 씨의 영향으로 다섯 살 때부터 수상스키를 타며 담력을 키웠다. 2007년 경기 가평군 북한강에서 ‘땅콩 보트’를 탄 지은희는 미소를 짓고 있는 반면 안선주(왼쪽)와 신지애는 눈을 감은 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아버지 지 씨가 딸의 훈련을 위해 1999년 가평에 직접 차린 골프연습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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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희(왼쪽)가 지난해 6월 미국 뉴욕 주 피츠퍼드 로커스트힐 골프장에서 열린 웨그먼스LPGA대회에서 미국 진출 2년 만에 첫 우승을 따낸 뒤 아버지 지영기 씨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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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스키 지도자 출신 부친, 강에 거리 표시한 부표 띄워 샷 연습시킬 만큼 지극정성… 딸 위해 골프연습장도 차려
엄마 배속에서부터 유난히 움직임이 많았다. 고향은 강과 호수로 유명한 경기 가평군 남이섬 부근이었다. 어려서부터 놀이터는 물가였다. 다섯 살 때 청평호에서 수상스키를 탈 만큼 겁이 없었다. 아버지는 수상스키 지도자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아버지는 딸에게 11년 전 골프 클럽을 쥐여줬다. 마침 박세리가 US여자오픈 우승으로 ‘국민영웅’이 됐을 때였다. ‘제2의 박세리’를 가슴에 품었던 부녀는 마침내 꿈을 이뤘다. 13일 끝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지은희(23·휠라코리아)와 아버지 지영기 씨(54)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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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한국 여자 골프의 성공 스토리 뒤에는 헌신적인 ‘골프 대디(daddy)’가 있다. 지 씨 역시 극진한 뒷바라지로 딸을 메이저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골프 핸디캡 5의 고수인 지 씨는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과 춘천의 한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가평에 골프연습장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골프 치는 사람도 가평에 6명뿐이었죠.” 당시 연습장에서 이들 부녀가 만난 코치는 바로 현 골프대표팀 감독 한연희 씨였다. 한 감독은 “작고 야무지고 담력이 있었다. 대성할 소질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덜컥 채를 잡았지만 골프 불모지 가평의 환경은 열악했다. 딸의 레슨을 위해 하루는 서울로, 하루는 춘천으로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했다. 안 되겠다 싶어 1999년에는 은행 대출을 받아 아예 가평에 골프연습장을 차렸다. 강에 거리를 표시한 스티로폼 부표를 설치해 놓고 물에 뜨는 공을 치게 한 뒤 강에 뛰어들어 공을 수거해 올 만큼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는 스포츠 지도자 출신답게 체력과 심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딸을 틈나는 대로 체육과학연구원에 데리고 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게 했다.
아마추어 시절 한국여자아마선수권을 비롯해 주요 대회를 휩쓴 지은희가 2005년 프로 데뷔 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무너져 지 씨의 가슴은 새까맣게 탔다. 국내에선 준우승을 7번이나 했고 우승은 2번에 그쳤다. 2007년 지 씨는 20년 가까이 몸담은 수상스키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딸에게 다 걸기 위해서였다. 지 씨는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딸에게 조바심을 버리라고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지 씨는 지난해 딸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한 뒤에는 코치, 매니저, 운전사 등 1인 다역을 맡았다. 지난해 10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 출전했을 때는 식중독에 걸려 구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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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