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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이주연 피죤 부회장

입력 | 2009-05-16 02:54:00

이화여대 디자인경영대학원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선 이주연 피죤 부회장. 하얀 셔츠에 바지를 즐겨 입는 이 부회장은 “남들이 다 드는 명품 가방을 들기 싫어 10년 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가방을 찾고 있다”고 할 만큼 자기 스타일이 분명하다. 화가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지 13년째인 그는 “그림과 경영은 참 닮은 구석이 많다”고 말한다. 김미옥 기자


영원한 미술학도 CEO “경영은 그림이죠”

환경친화 액체세제 돌풍-매출 76% 급증… 시장도 녹여
대학서 디자인 열정적 강의…신문-책읽기로 트렌드 섭렵

“어제 신문들 봤어요? 다이아몬드 기사 났던데 다들 읽었나?”

이달 7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ECC관의 한 강의실로 들어선 이주연 피죤 부회장(45·여)이 학생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이 부회장은 “트렌드를 읽으려면 매일 신문부터 봐야지”라며 다시 한 번 학생들을 채근했다. 강의실에 들어선 이 부회장의 양손에는 지난 한 주간 직접 오려 놓은 신문 기사 뭉치와 각종 제품이 가득했다.

대학 캠퍼스로 간 부회장 교수님

강단에 서자마자 학생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출석 체크부터 하는 이 부회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교수님’이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이화여대 디자인경영대학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디자인 마케팅 분야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이 부회장이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다는 점에 착안해 교수로 초빙했다.

회사 경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 부회장은 일주일에 3시간 강의를 위해 손수 파워포인트로 강의물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신문 기사도 오려 모은다. 그는 “가르치면서 배우기도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즐겁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96년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피죤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촉망받는 미술학도였다. 그러다 미국에서 대학교수의 길을 택한 남동생 대신 큰딸이던 이 부회장이 경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업인이 된 후에도 오랜 꿈이었던 화가로서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피죤에서 일하면서도 서울여대와 동국대에서 소묘와 미술사 등을 가르쳤다. 몇 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그는 현재도 틈나는 대로 스케치 작업을 한다. 그에게 ‘그림과 경영’, 이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사회의 모든 현상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됩니다. 항상 곁에 있어서 알지 못했던 바람의 존재라든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분자운동을 어떻게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죠. 경영도 모든 가능성과 위기를 고려해 최선의 길을 택하는 문제 해결 과정인 것을 보면 그림과 경영도 서로 닮은 구석이 많아요.”

이 부회장의 독서 스펙트럼은 넓은 편이다. 경영 서적을 주로 읽긴 하지만 그보다 인문, 역사, 종교,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한다. 그는 “경영자로서 트렌드를 간과해선 곤란하겠지만 기본 소양이나 근본적인 정체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

피죤은 30여 년간 국내 시장에서 섬유 유연제와 세탁세제의 신시장을 개척한 생활문화 기업이다. 1978년 ‘빨래엔 피죤∼’이란 카피로 유명한 광고와 함께 첫선을 보인 섬유유연제 ‘피죤’은 당시 빨랫비누나 분말세제로만 세탁하던 주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드럼세탁기용 ‘드럼피죤’, 뿌리는 형태의 ‘스프레이 피죤’으로 진화했고 주방·욕실용 살균세정제 ‘무균무때’, 향균섬유 탈취제 ‘파인’, 보디클렌저 ‘마프러스’, 손 세정제 ‘피죤 무무’ 등으로 피죤이 내놓는 제품은 생활용품 시장에서 매번 화제가 됐다.

피죤이 생활용품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것은 2005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액체 세탁세제 ‘액츠’다. 분말 위주였던 세탁세제 시장에서 ‘액츠’는 돌풍을 일으키며 지난해 매출이 76%나 급증하는 등 시판 3년 만에 세탁세제 시장 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렸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는 매출 500억 원, 세탁세제 시장 점유율 12.5%를 목표로 잡고 있다.

액츠는 사실 이 부회장의 노력이 담긴 ‘작품’이다. “액츠는 찬물에서도 물에 닿는 즉시 완전히 녹아버려요. 반면 가루세제는 최소한 5분이 지나야 비로소 물에 녹지요. 액체세제를 사용하면 그만큼 전력을 아낄 수 있어 소비자에게도 이득입니다. 앞으로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판단해 누구보다 먼저 액체세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 부회장이 환경에 갖는 관심은 기업인 그 이상이다. 일종의 ‘의무감’이다. 피죤이 독일로 망명한 천재 북한 과학자 궁리환 박사와 함께 17년간 연구해 1999년 내놓은 친환경 살균세정제 ‘무균무때’도 그 예다. 이 부회장은 “무균무때는 모든 균을 죽이는 기존 살균 제품과 달리 인체에 유해한 50여 가지 균만 골라 없앨 뿐 아니라 자체 분해 기능이 있어 수질오염과 대기오염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때 외국 유명 생활용품 회사에서 백지수표를 내밀며 무균무때 제조법을 전해달라고 했지만 부친인 이윤재 피죤 회장이 ‘피죤 이름을 달고 세계적인 상품으로 키우겠다’고 거절한 일화도 소개했다.

피죤의 미래 청사진은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의 생활문화 기업이 되는 것이다. 2500만 달러(약 314억 원)를 투자해 세운 중국 톈진(天津) 공장 준공을 계기로 중국 시장은 물론 유럽 및 동남아시아 진출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마침 기자가 이 부회장을 어버이날(5월 8일) 전날 만난 터라 부친인 이 회장에 대해 물었다. 이 부회장은 “나보다도 훨씬 개방적인 분”이라며 “가수 이효리 씨의 출신 대학이 어딘지 아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를 배운 것이 나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이주연 부회장 프로필::

―1986년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1993년 미국 메릴랜드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칼리지 졸업

―1996년 미국 퀸스 칼리지 대학원(회화 전공) 졸업

―1996년 피죤 디자인실 실장

―2001년 피죤 관리총괄부문장(부사장)

―2007년∼ 피죤 대표이사 부회장 및 피죤 모터스 대표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