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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전주성]위기 겪는 지금이 개혁할 좋은 기회

입력 | 2008-11-10 03:03:00


국제 금융위기가 본격적인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나라마다 총수요 확대를 위한 정책에 골몰하고 있다. 문제는 정책수단마다 효과에 한계가 있거나 부작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시장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금리나 세금을 내려도 투자나 소비가 크게 늘지 않을 수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동시에 통화와 재정을 푸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누군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결국 실력 있는 정부는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회복을 유도할 것이고, 뒷북치는 정부는 국민 고통을 배가시킬 것이다. 신용위기 초기 제압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우리 정부가 실물경기 대책에서는 선방할지, 아니면 또 끌려다니며 불끄기에 급급할지 관심거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선의 정책조합을 찾고, 이것이 제 효과를 내도록 정부신뢰를 높이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통화정책은 통화당국의 의지만으로 신속한 정책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총수요 조정 수단이다. 다만 신용경색의 여파로 평상시와 같은 신용팽창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총수요 확대라는 정책기조의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고, 기업과 가계의 부채부담을 완화한다는 의미에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금리인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신중한 정책판단이라는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한국은행이 신용경색 대응 과정에서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문제다.

실물경제 처방이 신뢰 시험대

통화정책이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재정확대가 핵심적인 총수요 확대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재정정책은 경제논리 못지않게 정치논리가 작용하며, 적자나 채무의 변화가 국가신뢰도에 영향을 주므로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나아가 법 개정이나 국회 동의 등 절차상의 문제와 예산집행 체계의 복잡성 때문에 기대만큼 효과가 빠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설사 감세나 이전지출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도 소비로 이어지는 부분이 크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재정확대의 경험이 적으므로 국가채무 수준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재정을 통한 경기조정 능력이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자동안정장치가 미흡하고 지출 전달 체계도 비효율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지출항목의 조기집행을 독려하고, 추가적인 재정지출은 몇 가지 핵심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재정적자는 액수가 커지더라도 단기에 몰아서 하는 것이 낫다.

설사 국가채무 수준이 국제 평균보다 낮아도 구조적 적자가 지속된다는 시장 평가가 이루어지면 그날로 정부신뢰는 추락한다. 사회간접자본 등 경제사업은 총수요 확대에 도움은 되지만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어 재정지출과 적자재정을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지출 우선순위는 소비여력이 부족한 저소득층과 청년계층에 두는 것이 옳다. 일자리도 정부 스스로 만들기보다는 중소기업 교육훈련이나 인턴채용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감세정책의 경우 당장의 총수요 확대보다는 공급 측면의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세제 하에서는 어떤 정책도 제 효과를 내기 어렵다. 세금 문제에서 정치논리가 판치는 것도 제도의 경제적 합리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세제개혁은 국가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이후 단 한 차례의 개혁도 없었다. 지난 정부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증세 기조의 세제개혁이 성공할 리 없다.

멀리보고 세제개혁 등 힘써야

역설적이지만 위기를 겪는 지금이 미뤄둔 개혁을 생각할 시점이다. 기왕에 하는 적자재정이라면 단기 총수요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성장잠재력 및 정부신뢰에 영향을 줄 개혁조치도 함께 하는 것이 최상이다. 증세보다 감세를 하면서 세제개혁을 하기가 쉽고, 예산을 늘리면서 지출 우선순위와 집행체계를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다. 산업이나 금융의 규제 완화도 구조적 취약성을 없애는 조치와 병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단기 문제에 휘둘리며 정책 자산만 낭비할지, 정말 국가 위상을 높일 의지와 능력을 보일지 두고 볼 일이다. 경쟁국이 재정적자와 저성장에 시달릴 때 우리만 독야청청 할지, 그 반대가 될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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