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활활’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은 모처럼 주가 상승을 알리는 붉은색 숫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시행 등의 영향으로 8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2.27포인트(5.15%)나 급등했다. 연합뉴스
글로벌 신용위기 일단 한고비 넘겨… 유가도 하락 안정세
외국인 주식-채권 순매수… 코스피 올 두 번째 ‘사이드카’
전문가 “PF대출 부실위험 경계… 기업 유동성 주목할 때”
■ 국내 금융시장 안정 되찾나
《한가위를 앞두고 날아든 미국발 호재는 한때 패닉 양상을 보이던 한국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금융위기설에 근거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에 대형 호재까지 터지면서 원화, 주식, 채권의 가격이 모처럼 동반 상승했다. 고(高)유가, 글로벌 신용위기 등 외부 악재들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의 물가, 경상수지 등 경제 지표들도 점차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
하지만 한국 경제의 실물 경제의 취약성이 여전한 데다 외부 악재들도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이 아니어서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세는 여전하다. 낙관적 전망을 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많은 상황이다.
○ ‘셀 코리아’ 급속히 진정세
이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양대 모기지 기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책 발표는 그동안 국내 증시의 최대 부담이던 외국인의 ‘셀 코리아’ 추세가 진정될 것이란 기대를 키웠다.
그동안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유동성 문제에 봉착한 외국인투자자들은 자금 확보를 위해 연일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팔아 치웠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실제로 5일까지 14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한 8일에는 97억 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9월 위기설’의 핵심은 외국인투자자들이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일제히 팔고 떠나리라는 것. 하지만 채권시장 상황은 정반대였다. 외국인들은 이달에도 8일까지 1조2400억 원가량의 상장 채권을 순매수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해소되면 한국을 빠져나간 외국 자본이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시장 안정화는 환율과 수입물가 상승을 막아 한국의 내수(內需)를 살리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자 유입에 대한 기대감은 달러 고갈 현상이 빚어지던 외환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의 투자금 회수는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인 국제유가는 고점 대비 30% 가까이 떨어졌다. 유가 급등은 경상수지 악화와 환율 상승, 외환보유액 소진을 초래해 ‘제2의 외환위기’를 촉발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 같은 가능성이 소멸된 것이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음과 동시에 올해 들어 한국 경제를 짓눌러 온 이른바 ‘9월 위기설’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위기설의 실체가 없음을 시장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9월 위기설은 정부뿐 아니라 증시전문가들이 보기에도 현실성이 희박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면서 “위기설 때문에 그동안 시장이 과(過)매도 국면에 들어섰던 것이 이번 증시 반등의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 최악 국면 지났지만 안심은 일러
증시 및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일단 “최악의 국면은 지났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국내외 금융위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최악의 상황은 지나가고 있다”며 “주식시장은 바닥다지기 이후의 완만한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3월에도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구제금융 소식에 금융시장이 잠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리먼브러더스 등으로 부실 우려가 확산되며 다시 조정을 받은 적이 있다.
금융시장 자체도 아직 ‘안정’이라 부르기 힘들다. 9일 환율 하락폭은 10년여 만에 최대치였고 코스피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발동돼 폭등을 막는 등 시장의 진폭이 지나치게 크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투자전략실장은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신용경색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도 660조 원에 이르는 가계대출 및 저축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위험 등 ‘뇌관’이 남아 있어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금융기관이 채권을 발행할 때 물어야 하는 가산금리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투자-소비-생산 등 실물지표도 아직 우울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가와 금리수준, 이달 말부터 발표될 3분기(7∼9월) 기업실적,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한 주요 대기업들의 유동성 문제 등 향후 경제지표의 방향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당국에서 PF 대출과 가계 주택담보대출 건전성 관리를 하고 있는 만큼 미국에서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국내 주택 금융시장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영상 취재 : 박 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