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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성희]강남 엄마에게 배우는 ‘참여’

입력 | 2008-08-06 02:59:00


나 자신 특별히 민주주의의 전사(戰士)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국민으로서 할 도리는 하고 살았다고 자부한다. 투표권을 가진 이래 대선, 총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모든 투표행위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해외출장 때문에 딱 한 번 대선 투표를 하지 못한 것 빼고 말이다. 모든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지방의원의 경우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를 때도 많았지만 선거공보라도 찾아 읽으며 ‘최선(最善)이 아니면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하려고 애를 썼다.

낮은 투표율은 民意왜곡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악착같이 투표하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진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투표율 15.5%. 허탈하다. 임기 1년 10개월의 교육감을 뽑는 데 320억 원의 선거비용이 들어간 것은 민주주의 비용이라고 치자. 어차피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제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어떤 이는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이 낮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냐고 말한다. 요임금 함포고복(含哺鼓腹·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며 즐김) 설화가 보여주듯 백성이 편안하면 임금의 공덕, 그러니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정치가 안정된 나라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우리나라처럼 정치가 불안하면서 국민의 정치 관심도가 높은 나라는 흔치 않다.

기권도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투표할 권리가 있다면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얘기다. 투표행위에 따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기대편익이 작을 경우 유권자는 기권을 선택하게 된다. 바쁜 현대생활에서 투표장행(行)을 막는 핑계와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한 사람의 기권은 상관없지만 다수가 기권할 경우 단결된 소수에 의해 투표 결과가 왜곡되는 현상이 생긴다. 공공선택이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맨커 올슨은 저서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노동조합 카르텔 등 특정집단에 의해 다수결의 이익이 침해되는 집단행동의 논리를 간파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고한 바 있다.

그런 논리에서 15.5%짜리 교육감이 무슨 대표성을 갖겠느냐는 반발이 나올 법은 하다. 공정택 교육감의 당선은 전체 시민의 의사가 아니라 ‘전교조 반대’를 위해 휴가까지 미루고 투표장으로 몰려갔다는 ‘강남 엄마’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강남 엄마는 민의를 왜곡하는 단결된 소수인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공 교육감의 교육정책이 싫다면 선거 결과를 비난할 게 아니라 이들처럼 투표장에 몰려갔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참여’란 투표를 말하는 것인데 서울시민은 투표엔 참여하지 않고 어디 가서 무슨 참여를 하는지 모르겠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는 우리 국민이 누구를 ‘교육의 수장’으로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교육문제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 국민에게 교육문제는 곧 자녀의 성적문제일 뿐, 국가 백년대계와는 상관없는 말이다.

참여 않으면 비판도 말아야

물론 교육감 직선제는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교육감이 중요한 자리라고는 하지만 유권자 중에는 교육과 무관한 노인이나 미혼도 많다. 이들에게 투표장에 나가라는 것은 서울시민에게 경기도지사를 뽑으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808만 서울 유권자 가운데 124만 명만이 투표장에 갔다. 이는 자녀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학부모 250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말이 맞긴 맞는지 의심스럽다.

선거가 끝난 지금 학부모단체를 중심으로 교육감 선거제도 개선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변치 않는 진실은 민주주의는 참여, 즉 투표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있지만 투표하지 않는 자는 비판하지도 말아야 한다. 강남 엄마에게 배울 것은 바로 그런 참여정신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