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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나무밑에 잠든 콧대 높은 아씨

입력 | 2008-07-26 03:01:00

‘빨간늑대’ 그림=마거릿 섀넌, 베틀북


누가 보아도 깜짝 놀랄 만한 미모를 갖춘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가문도 한미하지 않아 주위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존귀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점점 자라서 정혼할 나이에 이른 그녀의 미모는 신비하도록 눈부셨고, 그녀의 총명과 지혜로움을 뛰어넘을 만한 재원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가계 또한 궁핍하지 않아 몸에 걸치는 의상은 언제나 황홀했습니다. 모든 것에서 그녀를 능가할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딱 한 가지, 공주라는 호칭을 들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모든 것에 그녀는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녀를 칭송하여 기렸습니다. 물론 그녀 자신도 주위의 칭송과 대접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쑥스럽지 않았고 부담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에는 턱과 콧대를 쳐들고 걸었으며, 누추하고 시끄럽고 구질구질하며 야단스러운 자리는 누가 불러도 거들떠보지 말라고 부모는 가르쳤습니다.

어느 비 내리는 날 오후, 그녀는 또래 여성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지금 앉아 있는 주택의 기왓골이 몇 개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 뜰로 뛰어나가 비를 맞아가며 기왓골을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사람, 그녀는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데도 기왓골의 수효를 정확하게 알아맞혔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그녀의 예지력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거실에 앉아서 기왓골에서 뜰 아래로 떨어지는 낙숫물의 수효를 헤아렸던 것입니다.

그녀는 고고했고, 이른바 보통 사람의 눈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 말았는데 자신과 행복한 생애를 같이할 반려자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미모에 있어서나 지혜로움에 있어서나 그녀를 능가할 여성을 찾아볼 수 없는데도 반려자는 끝내 나타날 줄 몰랐습니다.

궁여지책으로 그녀는 화장을 곱게 하고 눈부신 의상으로 치장을 한 다음, 큰 길거리에 있는 나무 아래로 가서 자신의 여성스러운 자질을 나 보란 듯이 뽐내며 반려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 달 두 달, 나무 아래에서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지쳤고 어느 날 해질 무렵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나무 아래에서 새우잠을 자는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처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젊은 여성이 무슨 연유로 나무 아래에서 잠이 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경꾼 중에서 누군가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쯧쯧 우리 공주님, 이제는 꿈속에서만 반려자를 뒤쫓을 수밖에 없는가 보군.”

김주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