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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아의 푸드 온 스크린] ‘작업녀’의 맛 모르는 캐비어 사랑

입력 | 2008-05-21 08:18:00


‘프라이스리스’의 캐비어

“캐비어 좋아하세요?”라고 누군가 물어오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 취향이고 기호의 문제인데도 물 건너온 이 특정 재료에 관해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아뇨, 한번도 못 먹어봤는데요”라거나 “어쩌다 먹어봤는데 왜 맛있다는 건지 모르겠던데요”라고 대답하면 왜 안 되는 걸까? 사실 나는 바싹 구운 토스트 위에 삶은 달걀 한 조각이나 저민 양파 위에 올린 캐비어보다 뜨거운 하얀 쌀밥 위에 얹어 먹는 명란젓 한 젓가락이 훨씬 맛있다. 그런데도 캐비어를 전혀 모른다거나, 맛 없다고 말하기는 괜히 힘들다.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의 ‘된장걸 꽃뱀’ 연기 변신이 흥미로운 영화 ‘프라이스리스’에 캐비어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에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스위트 룸에서의 숙박, 온갖 럭셔리 브랜드 쇼핑, 최고의 식사를 즐기는 것을 거의 직업으로 삼은 오드리 토투. 그녀는 메뉴에서도 가장 비싼 가격인 캐비어를 시켜 숟가락으로 퍼 먹으며 “캐비어의 맛을 잘 모르겠다. 익숙해질 때까지 먹어보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아, 니스의 그녀나 서울의 나나 똑같구나!’

세계 3대 미식 재료라는 게 있다. 이제는 퀴즈 프로에서도 난이도 ‘중하’ 수준이 된 이 문제의 답은 푸아그라, 트뤼플, 캐비어다. 왜 그것들이 세계 3대 재료가 된 걸까. 우선 ‘구하기 어렵다’가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동물애호가들이 질색하는 폭력적인 사육 방식으로 오리나 거위의 간을 지방간으로 만드는 푸아그라, 돼지나 개를 풀어 땅 속 깊이 박혀 있는 버섯을 캐는 트뤼플, 15년 이상 성장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철갑상어의 알 캐비어.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공급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 다음 이유는 맛있다는 것인데 이 '맛있다'라는 주관적인 잣대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대체로 이 재료들이 가진 맛은 독특한 질감과 향에 있는데 먹는 사람에 따라 향긋할 수도, 진한 야생의 향일 수도 있다. 또 부드러울 수도 있지만 느끼할 수도 있고, 짭짤한 고소함보다는 찝찔한 비릿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어서 맛으로 그 이유를 수긍하기는 어렵다.

명예로운 타이틀을 가진 재료라면 입에 들어가자 마자 경천동지할 맛의 향연을 보여주거나 태어나 처음 먹는다고 해도 최고의 맛을 느꼈다는 것을 머리와 혀와 마음이 곧바로 알아야하는 것 아닐까.

캐비어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음식, 요리의 보석,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고 칼로리가 적은 완벽한 식품,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맛을 볼수록 자주 먹지 않으면 못 견딘다는 이유로 섹스와 가장 비슷한 음식이라는 긴 수식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캐비어는 입보다 머리나 마음이 먼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물론 익숙해져 ‘아, 캐비어 먹고 싶다’는 정도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세계 3대 미식 재료인 이 진미는 퀴즈에 나오는 정형화된 정답으로 굳건하다. 누군가 “트뤼플 좋아하세요, 푸아그라나 캐비어를 즐기세요?” 한다면 오드리 토투처럼 말해야겠다. “맛있다는 생각이 아직 안 들어요. 맛있을 때까지 먹어보려고요.”

세계 3대 진미를 많이 먹어보지 않은 것은 태생적 음식 문화의 차이일 뿐,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값비싼 재료를 수제비 먹듯 못했다는 게 나쁜가? 비싼 건 비싼 건데….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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