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를 단번에 없애버린다며 ‘더스트버스터(DustBuster)’라고 이름 지어진 소형 충전식 청소기. 손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이런 청소기는 요즘 다양한 디자인으로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작은 미국 블랙앤드데커사에서 생산해 1979년에 처음 내놓은 것이었다.
블랙앤드데커사는 전동 공구를 생산하는 회사로 소형 모터와 충전지 분야 전문회사다. 기존의 공구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성장이 어려움을 겪자 회사는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새 아이디어는 디자이너에게서 나왔다.
당시 디자인부서를 총괄하는 디렉터이자 디자이너였던 캐럴 간츠(Carroll Gantz)는 어느 날 집에서 과자를 먹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청소하기 위해 대형 청소기를 벽장에서 꺼내다 문득 ‘어쩌면 이렇게도 불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그만 부스러기를 청소할 때마다 크고 무거운 대형 청소기를 끌어내야 하다니, 게다가 길고 투박한 전기선을 풀어 연결하는 것은 얼마나 번거로운가. 그는 필요할 때마다 손쉽게 청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크기가 아주 작은 청소기를 상상한다. 더스트버스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간츠는 다음 날 바로 회사에 가서 모터와 충전지를 연결하고 앞 부분에는 필터와 진공모터를, 뒤에는 손잡이를 다는 더스트버스터의 기본구조를 그렸다. 한 손으로 잡아 사용하기에 편리하면서 좁은 구석까지 닿을 수 있도록 직렬구조로 된 디자인이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속 카우보이들이 애용하는 권총을 닮기도 하여 재빨리 꺼내 사용하고는 다시 집어넣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 디자인은 바로 제품으로 탄생했다.
우리 주변에는 불편한 점들이 수없이 많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흔히 사소한 문제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문제를 보면서도 떠올리지 못한 아이디어를 간츠는 사용자 관점에서 본인이 원하는 점을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이 제품은 오리지널모델이 선보인 뒤 20여 년 동안 1억 개 이상이 팔렸다. 회사는 소형 청소기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고 지금은 다양한 관련 제품을 잇따라 내놔 선두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디자이너가 사소한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발견한 작은 아이디어가 회사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보는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발상이 가능하다. 아이들 장난감은 어른들의 세계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 세상이다.
작고 귀여운 장난감들이 실제로 사용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라. 이런 상상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캐럴 간츠는 세상을 다른 스케일로 보는 능력을 지녔다.
박영춘 삼성디자인학교(SADI) 제품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