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물론 중고교생들도 거리로 나와 시위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근거 없는 광우병 괴담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번져 국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논란은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객관적 사실이나 과학적 조사로 검증된 것이 아니다. 미국 내에는 약 1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며 매년 약 3700만 마리가 도축, 유통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광우병이 발병된 경우는 3마리에 불과하다. 특히 1997년 동물성사료 금지 이후 10년간 전 세계에서 소비된 미국산 소는 3억5000만 마리에 이르지만 사람에게 광우병이 나타난 사례는 전혀 없었다. 쇠고기를 포함한 동물의 안전성 여부를 판단하는 국제수역기구(OIE)는 작년 5월에 미국산 쇠고기는 일부 부위를 제외할 경우 안전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부에선 우리나라 국민의 체질이 미국인과 다르기 때문에 미국이나 OIE의 기준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 사는 250만 명의 교포 및 유학생이 매일 같은 쇠고기를 먹고 있지만 문제가 생긴 사례가 없다. 매년 70만 명이 넘는 한국 여행객이 미국을 방문해 갈비나 햄버거를 먹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둘째, 쇠고기 수입의 문제는 한미 간의 문제보다 국제무역국가로서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문제다. 미국은 2003년 한 해만 해도 세계 115개국에 31억 달러 상당의 쇠고기를 팔았으나 2003년 말 미국산 소에 광우병이 발생하자 각국은 서둘러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작년 5월 OIE의 판정 이후 현재 세계 96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27개국에 수출을 하고 219개 국가로부터 수입을 하는 세계 13위의 교역국가다. 무역의존도는 75%에 이른다. 우리 경제는 세계시장과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어 국제적 무역규범의 준수는 필수적이다.
셋째,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육류 소비를 줄이지 않고 있다. 2003년 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금지할 당시 쇠고기 수입액은 연간 12억 달러, 돼지고기는 2억 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나 작년 쇠고기 수입액은 10억 달러, 돼지고기 수입액은 9억 달러였다. 쇠고기는 호주산 뉴질랜드산으로 대체되었고, 돼지고기는 수입액 자체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식품이 안전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원산지 표시를 철저히 해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고 수입 재개 이후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광우병 위험물질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검역체계도 보완해야 한다. 아울러 축산농가의 피해 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과 축산물의 경쟁력 강화 및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식품 수입의 안전 보장을 추구하는 것이 국제무역을 저해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의 의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2위 수출 대상국이자 한국에 두 번째로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대미무역은 2000년 이후 연간 10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쇠고기 문제는 막연한 유언비어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따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정략적 접근은 안 될 일이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