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가면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라틴계 요리사의 정통 피자를 맛볼 것이라 기대하는 이가 많지만 실제론 중국인이나 흑인 요리사가 만든 것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식당가에 각국에서 온 이민자 요리사가 늘면서 맛의 변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이집트 모로코 방글라데시 등 요리사의 출신지도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들은 이민 초기엔 주방보조로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했으나 최근 주방장으로 진급하거나 식당을 개업하는 사례가 늘었다. 로마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유명 향토음식점 사바티니의 요리사는 10명 중 7명이 이민자다.
이탈리아 경제 사정이 좋지 않던 1970년대만 해도 많은 이탈리아 요리사가 돈을 벌러 해외로 진출했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대중화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외국계 요리사 수가 더 많아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문제는 ‘어깨 너머로 배운’ 이민자 요리사로 인해 정통 이탈리아 음식이 ‘퓨전’ 형태로 바뀌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 요리 전문가들은 이들이 이탈리아에선 쓰지 않는 코리앤더, 커민 같은 향신료를 음식에 넣거나 간편한 조리 방식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변화에 이탈리아인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요리사의 자격 조건을 이탈리아 출신으로 제한하는 레스토랑이 있을 정도다.
로마에서 이탈리아식 커피점을 운영하는 중국인 주쿤펭(30) 씨는 “어떤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왔다가도 우리가 중국인인 것을 보고는 나가 버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요리사의 출신지와 맛은 상관없다’며 이민자 요리사 채용을 개의치 않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안드레아 시니가글리아 이탈리아요리학교 부장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조만간 이탈리아 주방장을 내세운 ‘엘리트 레스토랑’과 외국 이민자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관광)식당’ 등 두 가지 부류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이탈리아에선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