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55개국을 상대로 실시한 ‘정부 효율성’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31위에 그쳤다.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는커녕 갉아먹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무리한 순환보직으로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축적할 틈이 없다 보니 환경 변화를 못 따라가 정책 수요자인 민간보다 뒤지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데 따른 침체를 막고 창의적 직무 수행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순환보직제가 결국 정부 경쟁력 저하의 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선진국 정부들이 국가 경쟁력 제고에 안간힘을 쓸 때 우리 공무원들은 인사이동과 업무 파악에 시간을 허비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이 한자리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고작 1년 남짓이다. 1년이 안 돼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이 4∼5급은 42%, 고위 공무원은 61%, 1급은 75%에 이른다.
재정경제부 정책조정총괄과장 자리는 지난 5년간 7명이 거쳐 갔다. 지방국세청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8개월 정도여서 ‘경력 쌓는 자리’라는 얘기가 나온다. 선진국의 고위 공직자들이 보통 한자리에서 3∼5년 근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10년간 재무부 장관이 영국은 한 번, 미국은 다섯 번 바뀌었는데 한국(경제부총리)은 아홉 차례나 교체됐다.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 203건 중 87건이 결정되기까지 1년 이상 소요된 주요 이유로 잦은 기관장 교체가 꼽혔다. 비슷한 정책이라도 기관장이 교체되지 않은 경우 결정까지 평균 278일이 걸렸는데, 기관장이 바뀌면 2배인 540일이 걸렸다. 과장이나 팀장이 바뀌지 않은 경우 267일 걸렸지만 바뀐 경우엔 504일로 길어졌다. 정책서비스가 때를 놓치는 데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는다.
새 정부는 이런 폐습을 고쳐야 한다. 이것도 핵심적인 공공부문 개혁에 해당한다. 전문성은 따지지도 않고 신참 고참만 따져 보직을 맡기거나 ‘무슨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거쳤느냐’로 능력을 평가하는 경력 우선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바로 이런 관행이 대국민 행정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