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현 정부에서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예비역 육군 대장) 전 장관이 동아일보에 글을 보내왔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다음 달 평양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NLL 무력화 공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조 전 장관은 “안보적 사활이 달린 NLL을 결코 양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NLL 논란이 본질을 벗어나고 진실이 호도되는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NLL의 안보적 중요성과 가치를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싶다”고 기고 취지를 밝혔다.
조 전 장관은 대북 전략 및 전력 증강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며 정호근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함께 창군 이래 최장 군 생활(40년)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논란 때도 현 정부의 안보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고를 본보에 보내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본보 2006년 9월 4일자 A5면 참조
현정부 초대 국방장관 조영길씨 ‘전시작전권’ 기고》
1970년대 초 북한이 소련에서 스틱스 함대함미사일을 도입해 고속정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우리 해군은 재래식 함포에 의존하던 시기였다.
휴전 이후 처음으로 해상전력의 우위를 확보한 북한 해군은 즉각 공세적 작전으로 전환했다. 20년간 쌍방이 해상분계선으로 지켜 온 북방한계선(NLL)을 무효로 선언하고 서해 5도로 가는 뱃길을 차단했다. 이른바 ‘서해 5도 봉쇄사건’(1973년)이다.
백령도로 가는 뱃길이 끊기고, 급기야 군수물자와 생필품을 수송기로 공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무장과 속도에서 열세인 우리 함정들이 함부로 적의 미사일 사거리 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전면전을 각오한 과감한 호송작전과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사태를 수습했다. 그 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함대함미사일을 긴급 도입해 해상 우세를 회복하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6·25전쟁 당시 북한은 38선 이남의 개성, 연안, 옹진반도를 연결하는 선을 필사적으로 강점한 상태에서 휴전협정을 맺는 데 성공했다. 이 지역은 한국의 수도권을 직접 압박하는 공격의 발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해군력을 38선 이남으로 전진 배치할 수 있는 군사요충지였다. 그러나 제해권(制海權)이 없는 상태에서 서해 5도를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결과 그들의 군사적 이점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옹진반도와 해주만 입구를 초승달 모양으로 싸고 있는 서해 5도는 북한 해군의 작전활동은 물론 황해도 일대의 공군 활동까지 실시간으로 경보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옹진반도 남단의 함대기지와 연안에 배치된 해안포, 지대함미사일 기지들은 거의 가시거리 내에서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전 초기 수도권 서측방에 대규모 상륙작전과 저공침투를 계획하고 있는 북한군에 초전 기습 달성의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지역 일대에서 수많은 군사적 위기를 되풀이하면서 팽팽한 대치를 계속해 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90년대 말 북한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자 북한 군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세를 재개했다. 무장 함정으로 NLL을 침범해 충돌을 유발하는 한편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주장하고 나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연평해전이었고, 그때 요구한 분계선이 한강 하구로부터 인천 앞 덕적도를 잇는 선이었다.
그 와중에 참으로 희한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하는 것은 꽃게어장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경제 협력적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1년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침범했을 때, 그것은 북한의 유류 사정 악화가 원인이므로 제주해협을 열어 줘야 한다는 주장과 완전히 맥을 같이하는 논리였다.
무력 도발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희석시키면서 NLL 사태의 군사적 성격을 경제적 현안으로 둔갑시키려는 얼굴 없는 친북세력들의 음모였다.
북한군이 NLL을 침범하면서 꽃게를 입에 담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도 NLL 북쪽에 통제선을 설정해 놓고 민간 어선들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서해 5도를 통틀어 연간 2000t, 금액으로 100억 원 규모(2006년 기준)의 꽃게어장이 탐나서 목숨 걸고 NLL을 침범할 만큼 어리석고 무모한 집단도 아니다.
NLL은 서해 5도와 옹진반도 사이, 포병 사거리 안에 드는 좁은 해협을 양분하는 군사분계선이다. 따라서 NLL의 1차적 기능은 서해 5도의 방호다. 만약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면 서해 5도는 북한의 내해에 떠 있는 작고 외로운 섬들이 되고 말 것이다. 무력 침공을 당해도 방어할 방법이 없다.
북한 군부로서 보면 NLL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고 과정이다. 일단 NLL 문제가 뜻대로 타결되면 다음 단계로 그들의 영해 내에 들어온 서해 5도상의 군사기지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이 군사적 요지를 손에 넣을 다음 계획을 꾸며나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남쪽의 친북세력들은 다시 특유의 화법을 동원해서 “남의 집 안마당에 감시초소를 세워놓고 어떻게 화해 협력을 말할 것인가”, “헌법상 한반도 전체가 우리 영토인데 서해 5도를 어느 쪽이 관할하든 무슨 큰 문제냐”라고 떠들고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재간과 속임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NLL 문제에 접근할 때는 무엇보다 서해 5도에 사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장래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유사 시 수도권 서측방 방호와 전쟁 억제 기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만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안보 현안이며, 군사전문가의 영역이다.
:조영길 전 국방부 장관:
△1940년 전남 영광 출생
△1958년 광주 숭일고 졸업
△1961년 장교후보생(갑종 172기) 입대
△1962년 소위 임관
△1969년 베트남전에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참전
△1974년 육군대 졸
△1989년 육군본부 전략기획처장
△1991년 육군 제31사단장
△1993년 합참 전력기획부장
△1995년 육군 제2군단장
△1998년 육군 제2군사령관
△1999년 합참의장 겸 통합방위 본부장
△2003년 2월∼2004년 7월 제38대 국방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