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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93년 미키모토 진주양식 성공

입력 | 2007-07-11 03:02:00


미키모토 고키치(御木本幸吉·1858∼1954)가 진주에 매혹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향인 일본 미에(三重) 현 도바(鳥羽) 시는 진주와 해녀의 고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지만, 미키모토는 늘 진주를 따내는 해녀들을 보면서 이 ‘신의 선물’에 푹 빠졌다.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이상분비물이 바로 진주다. 1800년대까지 진주는 자연만이 줄 수 있는 보석으로 여겨졌다. 1888년 미키모토는 진주 양식장을 만들어서 이 관념에 도전한다. 인간의 손으로 진주를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조개껍데기를 잘라 동그랗게 만들어 조개에 넣고는 바구니에 담아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가업인 우동 집을 접고 진주 양식에 뛰어든 남편을, 성실한 아내는 말리는 대신 “하늘의 뜻이라면 어쩌겠느냐”며 도왔다. 미키모토가 진주 양식에 성공한 것은 거의 파산에 이를 즈음인 5년 뒤, 1893년 7월 11일이었다.

구슬을 반으로 잘라낸 형태인 반원(半圓) 진주의 양식에 성공해 수출하면서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특허권을 따냈고 생물이 처음으로 특허를 받게 돼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렇다고 미키모토가 여기에만 만족한 것은 아니다. 그의 꿈은 완벽한 구슬 모양의 진원(眞圓) 진주를 만드는 것이었다.

1905년 진원 진주 양식에 성공했을 때 엄청난 ‘발명’에 세계는 흥분했다. 미키모토의 진주는 천연진주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모조 진주’라는 비방도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지,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진주를 만들어내는 자극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는가 인위적으로 삽입했는가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미키모토 진주와 천연진주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동을 겪으면서 미키모토 진주의 판로가 세계로 확대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키모토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진주는 달의 눈물로 만들어지지요?” 미키모토는 답했다. “제 진주는 인간의 눈물로 만들어집니다.” 묵묵히 그를 돕다 30대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리면서 한 얘기였다. 특허기간이 만료돼 많은 사람이 진주 양식업에 뛰어들었지만 미키모토의 진주는 지금껏 최고로 손꼽힌다. 파종한 것 중 28%만 완전한 진주가 되는데 미키모토는 그중에서도 10% 분량의 최고 품질 진주를 제품에 사용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