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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쏘옥]역사 속 ‘이상 과열’, 그 끝은 ‘버블 붕괴’

입력 | 2007-06-27 03:00:00


‘이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국내에선 ‘비(非)이성적 과열’이라는 번역으로 더 익숙한 이 용어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1996년 12월 5일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증시의 급등을 우려하며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10여 년 만이다.

당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994년 초 3,600 선에서 6,437.10으로 급등한 상태였다.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쳐 ‘그린스펀 효과’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그의 경고도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다우지수는 거침없이 오르며 마침내 1999년 3월 29일 10,006.80으로 ‘지수 10,000’ 시대를 열었다. 5년 동안 3배로 급등했지만, 증시 주변에선 “이제 곧 30,000 선도 넘어설 것”이란 낙관론이 팽배했다.

미국만의 랠리는 아니었다. 1994∼1999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주가가 거의 2배로 올랐고, 캐나다 호주 홍콩 등 세계 증시도 급등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저서 ‘이상 과열’(사진)을 통해 그린스펀의 경고를 환기시킨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는 당시 기업들의 주가와 이익을 비교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주가 대폭락’으로 끝난 1929년 수준을 넘어선 것을 과열의 증거로 제시했다.

또 국민총생산(GNP)은 1994∼1999년 30%도 채 성장하지 않았는데, 증시는 3배로 오른 것은 과열 증시를 합리화하려는, 자기 암시적인(Self-fulfilling) 다양한 논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혁명 등으로 새로운 시대(new era)가 열린다는 경제적 사고의 등장, 그리고 연금과 펀드의 급성장으로 증시의 수급이 변한다는 기대, 미국 경제가 잘되리라는 낙관과 확신의 대두, 그리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투자 심리의 증대 등이다.

이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증시의 상승을 이끌고 결국엔 ‘버블’로 이어졌다는 진단이었다.

그의 현실 인식이 진실에 근접했음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버블 붕괴는 ‘별다른’ 징후 없이 시작됐다. 주가 대폭락으로 기록된 1929년 10월 28일, 1987년 10월 19일의 ‘블랙 먼데이’처럼.

미국 다우지수는 2000년 1월 11,723을 고점으로 하강 곡선을 그렸고, 이 수준의 주가를 회복한 것은 지난해 10월 3일(11,727.34)이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