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내수(內需) 산업으로 부르지 마라.”
한국 경제에서 내수 기업은 오랫동안 별 대접을 받지 못했다. 철강과 건설이 1970, 80년대 경제를 이끌어 왔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정보기술(IT), 자동차, 전자, 조선 등이 경제를 받쳐왔다.
이들 업종이 모두 세계를 누비며 돈을 버는 동안 내수산업은 늘 ‘한국 안에만 머물러 있는 기업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만드는 기업들은 국내에서는 뛰어나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는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내수 기업들은 눈부신 변화를 시작했다. 한국적인 먹을 것, 한국적인 화장품,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감각이 녹아 있는 유통업체들이 ‘한국’이라는 틀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화장품이 본토인 유럽을 누비기도 하고 한국의 유통업체가 세계 곳곳에서 이름을 떨친다. 한국의 내수 산업이 ‘내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세계인의 소비생활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내수산업 ‘섬세함’ 무기로 해외 공략
‘해외경영’ 특집기사목록
▶ 中 넘어 러-베트남까지…
세계로 뻗는 ‘유통한국’
▶ 한국맛의 내공… 식품한류 돌풍
▶ 한국의 멋, 글로벌 브랜드 날개 달다
▶ 세계 여성들 한국화장품에 반하다
▶ 내수기업 SKT, 세계로 훨~훨
○ 진취적인 정신으로 해외로 나가다
이마트는 이미 중국 진출 10년을 맞이했고 롯데백화점은 올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진출한다.
패션 기업인 제일모직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갤럭시나 빈폴 같은 브랜드는 이미 중국에 진출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향수는 프랑스, LG생활건강의 화장품은 베트남에서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내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분석이 나온다.
하나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더는 한국 안에서 기업의 성장이 어려워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많다. 농심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천문학적인 잉여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마트의 신세계나 롯데쇼핑도 지금의 사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기업이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즉 이 같은 내수 기업들에는 국내에 안주하는 쉬운 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로 진출해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는 결국 세계 어떤 기업과 붙어도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진취적인 개척 정신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 세계를 누비는 내수 기업
내수 기업의 글로벌화와 이에 따른 분전으로 한국 경제의 축 자체가 바뀐다는 평가도 나온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계에서 일본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강국으로, 한국은 중후장대(重厚長大)의 강국으로 인정됐다.
한국의 강점은 조선, 반도체, 철강 등 기계 공업에 집중돼 있었고 ‘섬세한 소비재에는 약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내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에서 활로를 개척하면서 한국 제품의 섬세한 강점이 곳곳에서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가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실제 2006년 수출기업의 실적이 죽을 쑤는 와중에도 한국 경제는 내수 기업의 분전으로 버텨 나갔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이미 제조업 분야의 상장 기업 가운데 내수주의 시가총액 비중이 지난해 9월 말 53%로 수출주(47%)를 역전시켰다.
시가총액 100대 상위 기업 가운데 지난해 9월까지 수출기업은 14조 원의 순이익을 냈을 뿐이지만 내수 기업은 24조 원의 이익을 올렸다.
내수 기업의 글로벌화가 국가 이미지 제고와 경제구조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중심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글=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