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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구 펀드 밀어주기

입력 | 2007-02-01 02:59:00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직장인 정모(30·여·서울 마포구 동교동) 씨는 지난해 1월 국민은행에서 정기예금 만기금액 2200만 원을 찾아 이 은행 계열 자산운용사의 ‘광개토일석이조펀드’에 전액 투자했다.

창구 직원은 “계열사인 KB자산운용의 최고 펀드매니저들이 운용을 책임지고 있고, 국민은행의 간부 사원도 많이 가입했다”며 가입을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가입 후 한 달 만에 펀드 수익률은 6% 이상 떨어졌다. 정 씨는 150만 원 이상 원금이 깨졌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중도해지했다.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수익률이 ―6%여서 일찍 환매하길 잘했다”고 했다.

은행과 증권사 등 펀드 판매회사의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가 심각하다.

일부 금융회사는 수익률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펀드를 계열사 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자에게 적극 권유하고 있었다.

○ 인기 펀드와 운용 성적은 별개?

본보 취재팀은 지난달 26일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 소재 12개 지점(각 은행 3개씩)을 방문해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국내 주식형 펀드 2개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은행들은 대부분 계열사의 펀드를 권유했다.

하나은행은 3개 지점 모두 계열사인 대한투자신탁운용의 ‘빅앤스타일주식’과 ‘쉬앤스타일주식’ 등 계열사 펀드를 추천했다.

우리은행 3개 지점도 우리CS자산운용의 ‘프런티어배당한아름주식’, 신한은행은 2개 지점이 계열 SH자산운용의 ‘탑스펀더멘탈인덱스주식투자’를 투자펀드로 각각 권유했다. 국민은행은 1개 지점에서 ‘KB스타 업종대표주 적립식’을 추천했다.

또 4개 증권사의 지난해 판매 상위 10개 주식형 펀드를 조사한 결과 계열 운용사의 펀드가 △미래에셋증권 10개 △한국투자증권 9개 △대한투자증권 5개 △삼성증권 5개였다.

KB자산운용의 ‘광개토일석이조’와 ‘광개토주식’은 지난해 국민은행에서만 각각 3450억 원, 2647억 원어치 팔렸다. 이 두 펀드는 지난해 국내 주식형펀드 판매 상위 20위 안에 들어 ‘인기 펀드’로 분류됐다. 하지만 지난해 운용 성적은 주식형 펀드 327개(설정액 50억 원 이상) 중 하위 2∼3%에 낄 정도로 비참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최대 판매망을 확보한 국민은행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 펀드의 ‘인기 비결’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 검증되지 않은 펀드 추천은 문제

금융회사가 ‘밀어주는’ 펀드는 대체로 계열 운용사의 신생 펀드가 많다. 특히 자기 회사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펀드를 추천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선진 금융회사들은 주력 펀드를 심사하고 선정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을 투자한다”며 “신생 펀드는 수익률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투자 리스크도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특정 금융회사에서 눈에 띄게 많이 팔린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부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약 8000억 원어치 판매한 계열 SH자산운용의 ‘미래든적립식주식1’은 최근 1년 수익률이 ―2%대로 원금 일부가 축났다. 또 하나은행 등이 1000억 원어치 이상 판매한 계열 대투운용의 ‘대한태극곤주식자’도 같은 기간 2%대의 수익률로 평균치를 훨씬 밑도는 성적을 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주력 펀드 수익률이 부진하면 운용사에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도록 요구하는 정도 외에는 ‘사후 관리’가 어렵다”며 “고객이 스스로 위험관리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허권범(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4학년), 안서현(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유진(서울대 경제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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