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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경제]박리다매 전략 어떤 상품에 잘 통하나요

입력 | 2007-01-17 02:58:00

일러스트 장수진


사례

초등학교 3학년인 성지(9) 양은 얼마 전 친구들과 재래시장을 찾았다.

동네 가게, 재래시장, 대형 할인점, 도심 상가, 인터넷 쇼핑몰, 홈쇼핑 등 다양한 시장에서 하나를 골라 특징을 조사해 오라는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성지와 친구들은 집에서 좀 떨어진,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재래시장을 선택했다. 주변에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도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상점 앞까지 나와 지나가는 손님의 관심을 끌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인들, 값을 흥정하느라 실랑이하는 사람들…. 생동감과 활력이 넘쳤다.

그때 옷을 가득 쌓아둔 한 옷가게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3장에 1만 원! 어떤 옷이든 3장을 1만 원에 팝니다, 골라보세요!”

옷가게 주인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에 성지와 친구들도 덩달아 신나게 옷을 골랐다.

“야, 이 옷 진짜 싸다.”

“어, 잘 어울리는데?”

서로 재잘거리며 옷을 골라 주고, 부모님께 선물할 옷도 샀다.

불현듯 ‘이렇게 싸게 팔아도 이익이 남을까?’ 궁금해졌다.

“아저씨, 그런데 이렇게 싸면 손해 보는 거 아닌가요?”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박리다매(薄利多賣)를 하는 거지. 싸게 팔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옷 한 장 팔아 남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익이 꽤 많이 남는단다.”

“아하!”

성지와 친구들은 선생님께 제출할 보고서의 제목을 ‘박리다매의 비밀’로 정했다. 재래시장의 특성을 아주 잘 요약해 주는 표현이었다.

그날 저녁, 성지는 부모님께 시장에서 산 옷을 드리면서 재래시장 이야기를 했다. 마침 저녁 뉴스에서 정유사가 기름가격을 올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정유회사들도 박리다매 전략을 쓰면 좋을 텐데. 소비자는 싸게 사서 좋고, 기업도 돈을 많이 벌어 좋고.” 성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글쎄, 정말 그럴까? 기름가격이 인상되더라도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값을 올리는 게 회사에 더 좋지 않을까?”라고 하셨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니 성지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박리다매의 비밀’에는 정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이해

‘박리다매’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시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상품의 수요량(상품을 구매하려는 수량)이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량이 증가한다.

하지만 상품마다 일정한 가격 변화에 대해 수요량이 늘고 주는 정도는 다르다.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요량이 많이 주는 상품이 있고, 반대로 가격이 많이 올라도 수요량이 조금 주는 상품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일정한 가격 변화에 수요량이 변하는 정도를 숫자로 나타내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요량이 많이 주는 상품을 ‘탄력적’이라고 하고, 가격이 많이 오르더라도 수요량이 조금만 주는 상품을 ‘비탄력적’이라고 한다.

스타킹과 일반 양말을 떠올리면 탄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타킹과 양말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둘 다 늘어난다. 하지만 늘어나는 정도는 다르다. 잡아당기는 힘이 똑같더라도 양말보다 스타킹이 더 잘 늘어날 것이다. 양말보다는 스타킹이 상대적으로 더 ‘탄력적’이다.

이제 ‘탄력성’이라는 열쇠를 갖고 ‘박리다매의 비밀’을 풀어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상품에 대해서 박리다매 전략을 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눈치를 챈 독자도 있겠지만, 더 탄력적인 상품을 팔 때 박리다매 전략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탄력적인 상품은 가격을 조금만 내려도 수요량이 크게 늘어난다.

가격을 내리면 상품 하나의 이익은 줄겠지만, 수요량(판매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박리다매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주변에 있는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을 마다하고 굳이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특성도 중요하다. 이들은 가격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재래시장의 가격이 비싸면 언제든지 대형 쇼핑몰 등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옮길 준비가 돼 있는 손님들이 많다.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선 아무래도 싼 가격의 박리다매 전략이 최고다.

반대로 비탄력적인 상품은 박리다매 전략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탄력적인 상품은 가격을 내리더라도 수요량이 크게 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가격을 올려도 수요량이 크게 줄지 않으므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박형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전공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