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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윤종구]‘정족수’ 채우려 외교를 잃어서야

입력 | 2006-11-17 03:06:00


16일 오전 8시 45분 서울 김포공항. 여야 의원 34명이 일본 도쿄(東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부터 사흘간 열리는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초 함께 가기로 돼 있던 의원 17명은 보이지 않았다.

사정은 이렇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전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본회의 처리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소속 의원들에게 한일의원연맹 행사 불참을 지시했다. 심야 원내대표회담에서 국회 일정에 합의해 밤 12시경 일본 행사 참석으로 방침을 바꿨지만 미처 연락을 못 받은 의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송영길 의원의 경우 16일 오전 9시경 기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까지도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기자에게서 상황 설명을 들은 그는 “다른 사람들은 갔다고요? 당 지도부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황당해했다.

이들은 오후 4시 비행기를 타고 뒤늦게 일본으로 떠나기는 했지만 이날 예정된 일부 행사에는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은 17일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면담하기로 돼 있다. 아베 총리는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을 위한 출발을 늦추기까지 했다니, 자칫 외교 결례로 비칠 수 있었던 상황이다.

여야가 대치하는 사안의 국회 표결에 대비해 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여의도를 벗어나지 말라고 단속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의 경중 나름이다.

한일의원연맹은 1972년 설립된 이래 한일관계가 꼬일 때마다 일본 정계와의 물밑 대화를 통해 갈등 해소에 기여하곤 했다. 여야 의원 18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도 양국 의원들은 사흘 동안 외교안보 경제 등 양국 현안을 토론한 뒤 공동성명을 내기로 했다.

집권당이 이처럼 중요한 외교 대사(大事)를 하루 앞두고 손바닥 뒤집듯 ‘가느니 마느니’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교마저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행사에 참석하기는 했지만 불참을 거론한 것만으로도 신뢰가 깎일 수밖에 없다. 야당 의원들마저 “외교 중대사를 정치싸움 때문에 포기하려 한 게 말이 되느냐. 국익 차원에서도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윤종구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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