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한 듯 김한길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 핵실험 이후의 비상 상황을 대비하고 극복해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위기관리 내각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31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위기관리내각’을 짜야 한다고 촉구하자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1일 발표될 새 외교안보라인 인선은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고집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장관 후보로 유력한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인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국가정보원장 후보인 김만복 국가정보원 1차장은 노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어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포용정책 고수=이재정 통일부 장관 카드는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 부의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가까이 지속해 온 햇볕정책을 성급하게 판단해 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 카드엔 현 정부의 북핵 대응 기조를 유지하려는 노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송 실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결정을 강조해 왔다.
김 차장이 국정원장에 유력한 것은 노 대통령이 임기 말 국정원에 대한 친정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차장의 행보가 그동안 철저히 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져 왔기 때문이다.
새 국방부 장관에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발탁되면 군 세대교체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현역 출신 장관인 만큼 군 상층부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
▽넘어야 할 인사청문회=성공회 신부 출신으로 성공회대 총장을 지낸 이 부의장은 2000년 옛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16대 국회에 입문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인해 ‘코드 인사’ ‘보은 인사’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성직자 출신답지 않게 2002년 대통령선거 직전 한화그룹에서 채권 10억 원을 받아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 측에 전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벌금형(3000만 원)이 확정돼 풀려났다.
송 실장은 북핵 사태의 책임론으로 야당의 집중 포화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 등 노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 때문에 ‘코드’ 공방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사실상 ‘후임 부적격자’로 지목한 김 차장을 선택한 배경을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김 참모총장에 대해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국방 정책 현안에 대한 조율 능력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을 너무 무시한다”=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청와대가 인사 발표를 하루 앞당긴 것과 관련해 “당이 인사문제의 정쟁화를 피해 보려고 민심을 전달하자마자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인사 방침을 발표한 것은 당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번 인사는 북핵 사태를 초래한 대북 포용정책을 바꾸기는커녕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고 국제공조까지도 외면하는 것”이라며 “특히 송민순 외교부 장관 카드는 한미 간 균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