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7일 광주 조선대 특강에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노무현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비토층이 사회의 중요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남의 탓’을 했다. 광주=연합뉴스
최근 노무현(盧武鉉) 정부 핵심 인사들의 발언이 잇달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은 7일 광주 조선대에서 특강을 통해 야당과 보수 진영을 ‘수구·극우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앞서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6일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에 있다”고 말했고,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1일 ‘서민을 향한 대통령의 멈출 줄 모르는 애정’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실장은 이날 ‘참여정부가 서 있는 자리’란 제목의 조선대 특강에서 “참여정부의 인기가 없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참여정부, 노무현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비토(veto) 세력이 사회의 중요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세력은) 무역 5000억 달러가 되든,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든, 소비와 산업이 살아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참여정부 때문에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고 외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김대중(金大中) 정권 이래 소멸되어 가는 수십 년의 기득권을 기필코 되찾아야겠다는 수구보수 세력들”이라며 “2007년에 (권력을) 기필코 되찾겠노라고 총동원령을 내리고 있고 궐기하자고 외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실장은 또 “DJ를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던 그들이 참여정부를 친북, 좌파정권으로 몰아붙이고 한미동맹이 깨졌다고 소리치고 있다”며 “국민의 정부에서 권력의 금단현상에 떨던 그 세력들이 지금은 권력의 착란증세를 보이고 있다. 보수를 가장한 수구, 극우세력들이 한데 뭉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 정부의 ‘색깔 시비’를 촉발시킨 강정구(姜禎求) 동국대 교수 문제에 대해 “이런 사람들을 모두 교도소에 구속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들이 말하는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바로 서느냐”며 “(그것은) 파쇼체제나 독재국가,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실장이 이날 ‘극우 보수 세력의 2007년 총동원령’ 운운한 것은 ‘반(反)한나라당 전선’의 결집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권 출범 후 여권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권에서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추락하고 민주당이 약진하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다.
이 실장이 특강 끝 부분에서 “광주·전남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 낸 국민의 정부의 모태였고 국토균형발전의 이정표를 새로 쓰는 참여정부의 고향”이라며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실장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신중하지 못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도성향인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당이 비상대책위 출범 후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며 중도 실용노선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수구우파 총동원령’ 운운하면 이념 대결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모처럼 지지율이 반등되는 등 회생 분위기에 접어든 당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이 실장이) 폭설(暴雪) 지역에서 폭설(暴說)을 했다”고 꼬집었다.
제성호(諸成鎬·중앙대 법대 교수) 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는 “현 정권이 ‘비토’ 당하는 정치 환경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었다”며 “국정 운영의 잘못된 기조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야당과 일부 언론 등 남의 탓만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제 공동대표는 또 “합리적 반대세력에 대한 포용 없이 총동원령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여기엔 상황 반전을 노린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