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金銀星·구속) 전 국가정보원 국내담당 차장이 재직 시절 국가안보와 관련된 대공 첩보까지 당시 정권 실세들에게 보고한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 감청(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에 따르면 김 전 차장은 재직 당시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인 8국(현 과학보안국)에서 도청을 통해 얻은 국내 정재계 인사 관련 정보와 함께 대공정책실에서 수집한 대공 첩보도 정치권에 건넸다.
정치권으로 유출된 대공 첩보 중에는 간첩 용의자와 탈북자 관련 정보, 노동계 동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시 국정원이 국가안보 관련 정보마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권으로 무분별하게 유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김 전 차장이 당시 정권 실세들에게 보고한 도청 정보가 이들 정권 실세나 당시 국정원장 등을 통해 청와대에도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검찰은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김 전 차장이 2000년 말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권노갑(權魯甲) 씨의 퇴진을 요구하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전화 통화를 도청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김 전 차장이 당시 도청 내용을 권 씨 등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그러나 서울 중구 삼성제일병원에 입원해 있는 권 전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도청 정보를 보고받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로 모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차장이 국내 주요 현안에 대한 통신첩보(보고서)를 보고받은 뒤 특정 인물을 집중적으로 도청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 전 차장이 2001년 12월 ‘진승현(陳承鉉)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직후 서울구치소로 자신을 면회 온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 직원들에게 도청 사실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차장은 최근 도청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자신의 부하였던 국정원 8국 전현직 직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 도청 사실 은폐를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검찰은 김 전 차장이 검찰의 도청 수사가 시작된 후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원장과 2, 3차례 만나는 한편 5, 6차례 전화 통화도 한 사실을 밝혀내고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닌지 조사 중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