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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입력 | 2005-07-23 03:05:00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존 르 카레 지음·김석희 옮김/320쪽·8500원·열린책들

영국 작가 존 르 카레(75) 씨의 본명은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월이다. 르 카레는 필명인데 콘월 씨는 “버스를 타고 런던을 돌아다니다가 본 가게 이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가게가 없다는 게 드러나자 “잘 기억되게끔 앵글로-노르만 귀족 같은 이름을 생각해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또 숨겼다가 털어놓은 것으로 작가가 되기 전의 직업이 있다. 그는 1983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선배 작가인 서머싯 몸과 그레이엄 그린을 들며 “나도 그들과 같은 분야에서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스파이로 일했다는 것이다.

당시 르 카레 씨의 전직이 궁금해진 것은 그가 스파이 세계의 비정한 현실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 왔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다. 1963년 나온 뒤 서머싯 몸 상과 에드거 상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스파이 소설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소설은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 베를린의 국경 검문소에서 시작한다. 우리 영화 ‘이중간첩’의 첫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독으로 달아나려는 스파이가 동독의 저격수에게 피격된다. 영국 스파이 책임자인 리머스는 이 일 이후 동독 내의 자기 스파이들이 모두 사살된 것을 알게 된다. 리머스는 복수를 위해 이중간첩이 되기로 한다.

평생 무엇이 진위(眞僞)인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온 리머스의 의식 세계는 이렇다.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의 일종이다. 세계 곳곳의 첩보원들이 모두 그런 거짓말을 한다. 당신이 그들에게 남을 속이는 법과 증거를 감추는 법을 가르쳐 주면 그들은 당신도 속인다.’

삶에 찌든 그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애인 리즈는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뭔가를 알아챈다. “당신은 남을 개종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광신자예요. 그건 위험한 존재죠. 당신은…복수나 무언가를 맹세한 사람 같아요.”

이 소설은 단순히 동서 냉전의 이분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악의 근원을 찾아 나선 한 인간이 발견하는 삶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상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라는 깨달음이다. 실제 스파이였던 콘월(르 카레) 씨도 그렇게 깨달았던 것 같다. 독일 내의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단 5주 만에 써낸 이 소설이 성공하자 그는 스파이 생활을 미련 없이 접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