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의 최고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60억 세계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애쓴 정신적 지주였다. 평화를 위해 그는 가톨릭교회가 과거에 범한 잘못을 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타종교와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평화의 사도로 재위 26년간 104회에 걸쳐 129개국을 방문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활발한 해외선교 활동을 펼친 교황이었다.
1978년 새 교황에 폴란드 출신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 선출됐을 때 전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522년 독일 출신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6년 만에 처음으로 비(非)이탈리아계 교황이 선출됐기 때문이다.
일찍 서거한 전임자의 이름을 이어받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였던 폴란드 크라코프 교구 바도비체에서 1920년에 태어났다.
8세 때 어머니를 잃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야겔로니카대에서 폴란드 문학 및 철학을 공부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솔베이 화학공장의 노무자로 채석장 발파작업 등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그는 시를 쓰거나 스포츠에 열중하면서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그는 1941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12시간 동안 꿇어앉아 있다가 하느님의 응답을 받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던 그는 종전 후 야겔로니카대 신학부 공부를 마친 뒤 1946년 사제품을 받았다.
1958년 38세에 주교가 된 그는 줄기차게 공산주의의 무신론을 비판했으며 1964년 크라코프 교구 대주교, 1967년 47세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대공산주의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는 마침내 1978년 교황에 선출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취임 초기부터 인간 생명의 존중, 세계 종교 간 대화와 평화, 그리스도교의 재(再)일치 등을 역설했다.
그는 1979년 3월 회칙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야말로 교회의 사명을 결정하며,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9년 모국 폴란드를 방문해 당시 자유노조에 대한 지지를 밝혀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 민주화의 초석을 놓았다. 1991년 반포한 회칙 ‘100주년’에선 ‘민주적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친자본주의적 태도를 발표해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회주의로 기울던 가톨릭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적극적으로 종교 간 화해에 나선 교황은 1993년 가톨릭과 2000여 년간 적대적이었던 유대교와 화해를 모색해 바티칸과 이스라엘의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과도 지속적으로 화해 교류를 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최초로 이슬람 국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2001년 시리아 방문 때는 역대 교황 가운데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찾았다.
그는 교회의 과거 오류를 바로잡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1992년,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중세 재판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데 이어 2000년 3월 ‘용서의 날’ 참회예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저항하지 못한 점, 십자군전쟁, 13세기 종교재판에 대해서도 참회했다.
그는 1981년 5월 아랍세계 방문으로 이슬람교도들의 분열을 초래했다고 주장한 터키인 테러범에게 총탄 3발을 맞고 중태에 빠졌으나 소생했다. 파킨슨병을 오랫동안 앓았고 몇 차례 수술로 건강이 크게 나빠져 일각에서 교황 사퇴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인류 평화의 사도로서 초인적 의지를 발휘하며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사람들은 그의 26년여 교황재위를 신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통계로 본 요한 바오로 2세 발자취◇
▼재위기간 26년…역대 3번째
1978년 10월 16일 즉위해 2005년 4월 2일까지 모두 26년 5개월 15일간 교황의 역할을 수행했다. 2000년에 이르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3번째로 긴 재위기간이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초대 교황이던 베드로가 34년(일부에선 37년으로 추정)으로 가장 길다. 그 뒤 비오 9세(1846∼1878)가 30년 이상 재임한 유일한 교황이며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13명이 20년 이상 교황 직을 지켰다. 평균 재위기간은 8년.
▼슬라브 민족 출신 첫 교황
역대 교황 262명 중 210명은 이탈리아인이었고 그중 99명은 로마 출신이었다. 나머지 52명은 프랑스인 16명, 고대 그리스권 출신 12명, 중동 출신 9명(시리아 6명, 팔레스타인 3명), 독일 5명, 스페인 및 아프리카권 출신 각각 3명 등이었다. 이 밖에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각각 1명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는 물론 슬라브 민족 전체를 봐서도 첫 교황. 또 1522년 독일 출신의 하드리아노 6세가 교황이 된 뒤 456년 만에 탄생한 첫 비(非)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었다.
▼129개국 124만km 여행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장 많이 여행을 한 교황이다. 이탈리아 국내여행은 146회, 국외여행은 104회로 129개 국가와 지역을 방문했다. 거리만도 모두 124만7613km로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3.24배.
▼482명 諡聖1338명 諡福
요한 바오로 2세는 482명을 시성(諡聖)했는데 이는 지난 4세기 동안 시성된 성인보다 많은 수치다. 또 테레사 수녀를 비롯해 1338명을 시복(諡福)했는데 이 역시 지난 4세기 동안 탄생한 복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유대교회당-이슬람사원 첫 방문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는 처음 1986년 로마의 유대교 회당을, 2001년 5월에는 다마스쿠스의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그는 또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교황으로는 처음 기도했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요한 바오로 2세 어록◇
▼“우리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서로 신학적 대화의 막을 올리는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의 통일로 가는 중요한 첫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제 ‘제3의 천년 왕국’이 다가왔습니다.”
(1979년 11월, 터키 소피아 대성전에서)
▼“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돈을 치르고 무기를 사게 만드는 세계의 열강들,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파괴를 일삼는 그들이 이제 인류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1980년 5월,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들을 방문해)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
(1984년 5월 방한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