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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내달 2일 퇴임하는 송광수 검찰총장

입력 | 2005-03-25 18:06:00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1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대선자금 수사 결과에 대해 해명하면서 검찰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권력을 소름 끼치게 한 검찰. 그 한가운데에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이 있었다. 그는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던 ‘검찰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했을까. 다음 달 2일 퇴임하는 송 총장을 만나 탐구해 보았다.》

―검찰 사상 초유의 대선자금 수사를 할 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고민할 게 뭐가 있나. 좌고우면하면 고민이 생긴다. 어렵더라도 마음을 정하고 나면 번민은 잠깐이다. 또 고민이 있더라도 지휘관은 자신이 안고 가야 한다. 살림살이 어렵다고 애들 앞에서 어렵다고 말할 수 없지 않으냐.”

―재임 2년 동안 검찰독립을 이뤄냈다는 평가에 이견이 없는 것 같은데….

“검찰독립이란 수사의 독립, 정치적 중립이다. 어느 사회나 100% 완성품은 없다. 지향점을 향해서 접근해 나가는 것이 발전이다. 과거에도 몇 번 시도가 있었지만 좌절됐다. 좌절을 털고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봐 달라. 제도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신년교례회 때 서열대로 줄 맞춰 서는 걸 없애고, 하급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등 관례를 깼다. 권위주의를 타파했다는 평가를 듣는데….

“권위주의와 권위가 있다는 건 전혀 다르다. 조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얘기하고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허례허식에 불과한 권위는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어느 기관이나 권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신뢰로써 얻어야 한다.”

―재임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노숙자 쉼터 등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낮은 곳’에서 일해본 소감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우선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고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국민과 검찰의 거리를 좁혀 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 때문에 시간에 제약이 많았다. 집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성당에 나가 밥을 지어 어려운 이웃에게 대접을 하고 있는데 퇴임하면 집짓기 봉사(해비타트)를 해 볼까 한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어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될까 걱정이다.”

―인사(人事) 운동을 하면 용심(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을 부려서라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법무부 검찰 1과장, 검찰국장 등 인사 파트에서 일하면서 용심을 부린 적이 있는가.

“검찰국장 시절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왜 능력으로 평가받지 않으려 하느냐’고 혼을 냈다. 벌을 주는 차원의 인사를 하기도 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인사청탁은 다른 기관에서도 있다. 하지만 검찰에선 문제가 된다. 가령 정치권의 도움으로 정치권 수사와 밀접한 자리에 갔다면 그 사람이 수사를 소신껏 할 수 있겠는가. 인사는 검찰독립의 요체다. 대다수의 검사들이 인사운동과는 거리가 멀지만 제 말을 ‘검찰이 잘됐으면 좋겠다’란 채찍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

―인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인권과 진실 가운데 검찰은 어느 것에 더 가치를 둬야 하는가.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좋지만 어느 것을 더 추구하느냐고 한다면 검찰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선호해야 한다. 강제수사가 남용되지 않고, 상대방을 고려하는 수사 그것이 인간적인 수사다.”

―그런데 인권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힘이 센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악용되는 것 아닌가.

“특히 정치권 수사에 있어서 수사를 받는 분들이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인권침해다’란 얘기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국회 대정부 질문 등에서 국회의원의 질문이 예리할 때 국무위원이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솔직히 심리적 압박이 없는 수사라는 게 있을 수 있겠나. 물론 불법적인 강압수사는 안 된다.”

―검사에겐 기소한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을 때 가장 허탈하다고 하는데….

“평검사 시절 1건으로 무려 6명이 무죄를 선고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증거가 나와서 무죄판결이 나오는 것은 검사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명이 무죄가 나더라도 검사에게 잘못이 없다면 불이익이 가서는 안 된다.”

―취임했을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머리가 많이 빠졌다. 흰머리가 없었는데 귀밑이 많이 희어졌다. 시력이 좋았는데 요즘은 눈이 침침하다. 체중도 2kg 불었다.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 운동을 못했다. 퇴임하면 등산도 다니고, 헬스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려고 한다.”(웃음)

―좌우명이 진광불휘(眞光不煇)인데….

“평검사 때 알고 지내던 경남 김해의 한 스님이 서예전을 했는데 거기서 그 글을 봤다. ‘진짜 빛은 번쩍거리지 않는다’란 뜻이 마음에 와 닿더라.”

―가요 ‘떠나가는 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가사가 참 좋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창원지검에서 근무할 때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걸 듣고 가사가 너무 좋아서 배우게 됐다.”

―마지막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따뜻한 검찰이 돼야 한다. 이것처럼 검찰에 필요한 말은 없다. 또 배려는 하되 결코 비겁한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 비겁한 수사란 힘에 비겁한 것과 약자에게 비겁한 것이다.”


▼업무관련 에피소드…시민 가장해 전화점검▼

송광수 검찰총장의 별명은 ‘송 주임’이다. 꼼꼼하고 깐깐하다고 해서 후배 검사들이 붙인 별명이다.

그가 일선 검사장들의 근무태도를 점검하기 위해 일반시민을 가장해 한 ‘전화 점검’ 일화는 유명하다.

“검사장님 계신가요?” “병원 가셨는데요, 누구시죠?” “저, 시민입니다.” 이런 식이다. 업무 시간에 개인적 용무를 보거나 일찍 퇴근한 검사장들에게는 불호령이 내려진다.

그는 일에 대해서는 ‘독한 사람’으로 통한다. 업무에 대해 우물쭈물하는 사람에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무실 밖까지 다 들릴 정도로 호통을 친다.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해외연수 지원 검사 가운데 토플시험 성적이 가장 우수한 검사가 미해결 사건 수가 많은 사실을 알고 “근무시간에 영어공부만 한 것 아니냐”며 그 검사를 연수에서 탈락시켰다.

검찰 간부들은 보고할 때도 식은땀이 난다고 한다. ‘사건을 뗐다’(‘처리했다’는 뜻)고 보고했다가 ‘누구는 사건을 붙여놓느냐’고 혼난 검사도 있다. 보고서에 ‘효과 거양(擧揚)’(효과를 거뒀다) ‘인식 제고’(인식을 높였다) 등의 어려운 말을 함부로 쓰면 빨간색 X표를 죽죽 그으며 나무란다.

그는 ‘검찰주’로 불리는 폭탄주를 싫어한다. 대구지검장 시절 한 평검사가 회식자리에서 “폭탄주 한잔하시죠”라고 하자 그는 “폭탄주를 그렇게 잘 하십니까. 저는 밥을 잘 먹는데”라며 “술잔과 밥공기를 누가 먼저 비우는지 내기를 하자”고 해 기를 죽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을 잘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선에서 좋은 수사를 하면 자신의 판공비를 아껴 수백만 원씩 격려금을 보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송 총장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깰 때 정확하게 깨고 칭찬할 때 제대로 칭찬한다”며 “이런 점이 단신(161cm)의 송 총장이 조직을 장악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힘썼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노숙자 쉼터를 찾아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봉사를 했다.

▼송 총장 말말말▼

▽“개개의 전투를 장면 장면 보지 말고 전쟁 전체를 봐야 한다.”=2003년 말. 대선자금 수사가 한나라당에 집중돼 기자들이 “지금이 고비냐”라고 묻자.

▽“나를 직접 조사하라.”=2004년 3월. 촛불집회 주최자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방침을 검찰이 사전에 보고하지 않은 데 대해 법무부가 조사하려 하자.

▽“내 목을 먼저 치겠다.”=2004년 6월. 청와대 등에서 공직부패수사처를 신설하는 대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축소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다면 나 스스로 중수부를 폐지하겠다’는 뜻으로.

대담=이수형 사회부 차장

정리=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