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은 정부에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주문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환경이 변화할 때 이에 부응하는 감독 당국의 기민한 대응’을 주문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정책 담당자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1960, 70년대에는 ‘경제근대화 고도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았고, 다른 목소리는 가려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경제구조가 복잡해지고 이해 관계자의 목소리도 다양해졌다. 금융부문만 보더라도 은행과 비은행 간 균형 발전의 필요성,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 가능성 차단 등 자칫 잘못하면 상호 충돌할 수 있는 복잡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최근 들어 정책 당국에 고도의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정책 과제로 부각된 것이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 확대 현상이다. 개방화 국제화가 필수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외국 자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일, 외환은행 등 국내 유수의 금융회사와 대우자동차 등 상당수 대기업이 외국 자본에 매각되었다. 1998년 말 18%에 그쳤던 거래소 상장주식에 대한 외국인 보유 비중이 2004년 말에는 42%에 달했다.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 확대는 외환위기 조기 극복과 국가신인도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 또 우리의 금융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고, 건전한 경쟁을 유발하여 선진 경영문화를 정착시키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투기성 외국 펀드의 단기 수익 위주 경영 등에 따른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국부 유출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방화에 너무 주력하다 보니 오히려 국내 자본이 역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금융지주회사, LG카드 등의 금융회사나 다수의 유망한 대기업이 새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 대규모 금융회사나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주체로는 외국 자본, 국내 산업자본, 사모투자전문회사(PEF) 등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걸음마 단계에 있는 국내의 PEF는 규모 면에서 아직 영세한 수준이다. 또 국내 산업자본의 경우 은행법상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원칙으로 은행 매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내법의 여러 제약 요인 등으로 비은행 기업 인수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기술과 자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고 국내법의 규율도 적용받지 않는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 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으로 감정적 대응을 해서는 곤란하다. 국내외 자본에 대한 동등대우 원칙을 준수하여 건전한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은 장려하되 그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유망 기업 매각 시 국내 산업자본이 오히려 차별을 당하는 측면은 없는지도 종합적으로 점검하여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PEF의 설립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그동안의 운영 과정에서 PEF제도와 관련된 여러 제약 요인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감독 당국은 PEF 활성화에 필요한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국내 연기금이나 보험사, 기업 등이 보유한 대규모 여유자금이 건전한 국내 자본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외국 자본이 우리 경제에 자유롭게 들어와 시장에 기여도 하고 열매도 딸 수 있도록 하되, 국내 자본도 육성해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며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그 결실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이우철 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