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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당당한 ‘세상의 절반’]여성경쟁력 과제는

입력 | 2005-03-06 18:23:00

폴린 페리 영국 상원의원(왼쪽)과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날 사장. 각종 여성 관련 국제회의나 경제포럼에서 얼굴을 익힌 이들은 서로 ‘영국의 엄마’ ‘한국의 딸’이라 부르며 ‘세상의 모든 딸들’에 대한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원대연 기자


‘엄마와 딸’ 같았다. 본보 시리즈 ‘여(女)-세상의 절반’을 위한 대담 요청에 폴린 페리 영국 상원의원과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날 사장은 흔쾌히, 그리고 정답게 얘기를 나눴다.

‘미래를 위한 한영(韓英)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페리 의원은 영국 최초로 고등교육기관의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인물. 김 사장은 지난해 서울에서 ‘세계여성지도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치열한 노력 끝에 정상에 이르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성주=영국이 선진국이라지만 여성인력을 활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더군요. 맥스 앤드 스펜서 백화점의 주 소비자는 여성인데도 그 백화점에는 이사급 여성들이 적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폴린 페리=기존의 사회조직이 남자 위주로 돼 있어 뒤늦게 뛰어든 여성들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영국에서도 학부 졸업생을 보면 남녀가 50 대 50의 비율을 보이지만 15년이 지난 뒤 취업한 여성의 급여는 남자보다 훨씬 낮고 지위도 형편없지요.

▽김=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5년 이상 사업하면서 남성 위주의 직장문화와 경영방식에 놀라곤 합니다. 지난해 열린 세계여성지도자대회에서 맥킨지 컨설팅사가 발표한 ‘아시아에서의 여성 능력 평가’ 보고서는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의 노동력 활용이 남성에 비해 격차가 큰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식기반산업 시대에는 여성 인력이 많이 활용돼야 합니다. 여권신장의 차원이 아니라 미래 경제발전을 위해서죠.

▽페리=물론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성들이 꾸준히 노력해 더욱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야합니다. 그리고 리더로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가 먼저 변화해야 합니다. 이제 여자라고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케임브리지대를 나왔지만 결혼과 함께 어머니처럼 집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3남1녀를 학교에 보내고 남자들보다 11년 늦게 시작했죠. 그들은 벌써 중간관리자까지 올라갔지만 저는 바닥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김=한국사회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썩 북돋아 주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법률이나 제도,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된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여성들이 미래에 대한 목표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얘기지요. 최선을 다하지 않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리=적극적으로 사회진출을 위한 프로그램을 찾을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케임브리지대에 있을 때는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루시 카벤디시대에 마련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학부를 졸업한 여성들이 뒤늦게 직업을 얻거나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계속합니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경쟁심이나 확신,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일하는 여성은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돈이나 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자신감도 생기고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남성보다 10배 이상 노력하는 여성도 있지만 상당수는 남 탓 잘하고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습니다. 장기적 비전도 부족하고요. 여성이나 남성이나 주어진 역할을 위해 목숨 걸고 뛰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페리=저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부사장급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아이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의 대학입학 시험을 앞두고 회사에 1년간 안식년을 갖겠다고 얘기했대요. 하지만 사장은 “무슨 소리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답니다. 여성에게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할 순 없죠. 저는 그 여성에게 여성리더로서 더욱더 일과 가정의 균형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리=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 폴린 페리 의원은

1953년부터 각급 학교와 평생교육기관에서 일하다 사우스뱅크 공대 총장에 영입됐다. 케임브리지대의 여자대학 루시 카벤디시대 학장을 역임했고 사우스워크 남작부인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엄마와 딸’이 있다.

○ 김성주 사장은

독일 핸드백수입판매회사인 ㈜성주인터내셔날을 토털패션유통회사로 키운 기업인. 199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차세대지도자 100인에 지명되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세계여성지도자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