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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음악 기행]핀란드 헬싱키

입력 | 2005-02-24 15:50:00

바다에서 바라본 헬싱키 시가지 전경. 검은 구름 사이로 한 줄기의 햇빛이 대사원 위로 떨어진다. 혹독한 고통을 슬기롭게 이겨낸 핀란드 사람들의 기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진 정태남 씨


헬싱키 항구 남서쪽, 숲이 우거진 공원 카이보푸이스토. 핀란드의 독립을 기념하여 심은 키 큰 전나무 앞에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1절 가사 첫 부분을 음미해 본다.

‘오, 핀란드여, 보아라, 너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험난한 밤의 장막은 이제 걷히었도다.’

1917년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핀란드에는 거창한 독립기념관이 없다. 카이보푸이스토 공원에 전나무 한그루만 심었을 뿐이다. 훌륭한 건축가가 없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국민들이 애국심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지배한 나라를 앞지르려는 의지가 있다면 독립기념관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사우나, 시수, 시벨리우스 3S의 나라

인구 500만 명 정도의 핀란드는 현재 여러 모로 모범이 되는 나라이다. 인구비율로 볼 때 도서관, 오케스트라, 합창단이 가장 많고, 좋은 건축물이 가장 많이 세워지는 나라다. 공직자들이 가장 청렴한 나라로 손꼽히며, 가장 깨끗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또 핀란드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면서도 ‘컴퓨터’를 ‘티에토코네(tietokone·셈틀)’라고 할 정도로 외국어의 오염으로부터 핀란드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새로운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모국어의 보전뿐 아니라 그 위상을 높이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핀란드어는 이탈리아어처럼 자음과 모음이 명료해서 노래하기에 편하다.

핀란드는 새로운 오페라를 제작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인데, 2000년 헬싱키가 유럽문화의 수도로 지정되었을 때는 1년 동안 자그마치 14편이나 되는 신작 핀란드어 오페라가 발표됐다. 그중 ‘파보 누르미’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9개나 따낸 핀란드의 육상선수 파보 누르미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헬싱키 올림픽 경기장 그 자체가 무대가 되는, 이른바 스포츠와 음악이 융합된 특이한 오페라였다.

핀란드라면 ‘3S’, 즉 사우나(sauna), 시수(sisu), 시벨리우스(Sibelius)를 떠올릴 수 있다.

그중 시수는 ‘집요함’이라는 뜻으로 핀란드 사람들의 기질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원동력은 바로 ‘슬기로움’을 바탕으로 한 ‘시수’가 아닐까? 강대국 틈에 낀 신생국 핀란드는 1939년 소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외부의 도움 없이 과감히 물리쳤고, 냉전 시에는 강대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겼다.

동시에 강력한 문화 잠재력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는데 그 구심점을 이룬 인물은 음악가 시벨리우스와 건축가 알바르 알토(1898∼1976)였다.

○민족의식 고취시킨 핀란디아

알토가 설계한 헬싱키의 명소 핀란디아 홀에서 서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호숫가의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향한다. 시벨리우스 기념상은 핀란드 최고의 여류 조각가 엘리아 훌티넨이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에 제작한 것으로, 그 작품 속에서 엄정한 표현력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철제 조각은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북유럽 특유의 대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하게 하는 그 형상은 시벨리우스의 음향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듯하다.

시벨리우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기 바로 직전인 1899년에 작곡된 관현악곡 ‘핀란디아’. 이 곡은 스웨덴에 이어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립된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핀란드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를 두려워한 러시아는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그 후 이 곡의 후반부는 시벨리우스 자신에 의해 합창곡으로도 편곡되어 전 세계에서 불리고 있다.

시벨리우스 공원에서 전차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간다. 헬싱키 항구 가까이 언덕 위에 세워진 신고전주의식 대사원이 시가지의 초점을 이룬다. 모든 것을 어둠으로 덮어 버릴 듯한 장막 같은 검은 구름 사이로 한 줄기의 햇빛이 대사원 위에 떨어진다. 지표를 뚫고 솟아오른 듯한 하얀색의 대사원은 검은 하늘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이 광경은 폭풍이 몰아치듯 격정적으로 시작하여 감미롭고 서정적으로 끝맺는 ‘핀란디아’를 연상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혹독한 고통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남을 앞질러 가는 핀란드 사람들의 기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민족 대서사시 ‘칼레발라’시벨리우스 음악의 뿌리▼

후기낭만파 음악의 대가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기념상.

후기 낭만파의 대가 시벨리우스(1865∼1957)는 핀란드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은 신생국 핀란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나라에까지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핀란드의 자연과 민족설화를 담은 대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 차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칼레발라가 19세기 중반에 정리되어 출판되자 핀란드 사람들은 민족의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었고, 시벨리우스는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한 후 자신이 핀란드 사람임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칼레발라에 심취했다.

그는 핀란드어 오페라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민족 서사시에서 보이는 핀란드어의 음운(音韻)을 음악에 표현하려고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음악이 어지럽다고 할 정도로 실험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반음계나 불협화음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시 다른 음악가들이 여러 가지 색상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있을 때, 그는 그저 맑고 깨끗한 샘물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오염되지 않은 핀란드의 자연환경처럼. 또 어쩌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신선함으로 특징지어지는 핀란드의 건축 및 디자인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