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1월 10일 미국 텍사스 주 버몬트 마을의 한 사암(砂巖)지대.
시추공에서 진흙이 부글거리는가 싶더니 몇 분 후 원유(原油)가 분수처럼 치솟기 시작했다. 근대 석유 산업을 탄생시킨 ‘스핀들 톱 유전’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세계 최초의 상업 유전은 이보다 앞서 1859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발견됐다.
에드윈 드레이크가 굴착기계에 파이프를 연결한 시추기를 고안해 땅 밑의 원유를 최초로 뽑아 올릴 수 있게 된 것.
드레이크의 굴착방식은 절구 찧듯이 땅을 뚫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수십 m 이상 깊이의 원유는 채굴할 수 없었고 따라서 개발할 수 있는 유전의 규모에도 한계가 있었다.
스핀들 톱 유전은 시추기의 혁명이 가져온 개가였다.
땅주인 파틸로 히긴스는 10년간 3만 달러나 들여 시추공을 뚫었지만 굴착 파이프는 지하 100m 정도에서 암석층에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굴착기술을 찾는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이를 본 한 기술자가 굴착 파이프 끝에 회전 분쇄기를 달 것을 제안했다. 새 시추기는 130m의 사암층을 통과하면서 원유에 도달했다.
스핀들 톱은 종래 유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했다. 생산량은 하루 약 8만4000배럴.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3만7000개 유전 전체의 하루 생산량과 맞먹는 양이었다.
석유를 찾아 사람과 돈이 버몬트로 몰려들었다. 1년 사이 인구는 1만 명에서 5만 명으로 늘었다. 하루 만에 땅값이 2.5배로 뛰기도 했다.
원유 저장시설, 운송용 파이프라인, 석유정제공장 등이 들어섰다. 근대 석유 산업의 틀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걸프, 텍사코, 아모코(엑손의 전신) 등 거대 석유 회사도 생겨났다.
1901년 이후 세계를 움직인 것은 석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유는 인류에게 양날의 칼이었다. 경제와 문명의 발전을 이끄는 한편 수많은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기도 했다.
석유 없이 살 수 없는 각국은 사활을 걸고 석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동해에서 가스 생산을 시작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산유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앞으로 석유가 ‘전쟁’보다는 ‘평화’를 상징하는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