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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비상구가 없다]선진국에선 어떻게

입력 | 2004-12-01 18:41:00


선진국의 자영업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는 자영업 문화가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처럼 ‘벼락치기식’이나 마지못해 창업을 선택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자신이 오랜 기간 종사한 업무와 관련된 업종을 선택해 최소한 5년 이상 준비한 ‘커리어(career)창업’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의 예비 창업자들이 손쉬운 창업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점이나 카페도 수십년간의 요리사나 웨이터 경력을 가진 이들이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차이는 상인(商人) 정신이나 기업가 정신이 그 사회에 어느 정도 축적됐느냐에 기인한다.

프랑스에서는 유명 식당의 주인이나 요리사는 사회 저명인사 대접을 받는다. 일본의 유명식당이나 소기업은 가업(家業)으로 수대(代)째 내려오는 곳이 많다. 미국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대다수 직장인들의 꿈은 자신만의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 자영업자들의 창업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이 요즘 같은 ‘자영업 대란(大亂)’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성숙한 자영업문화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일본의 ‘커리어 창업’ 모범사례▼

‘TS 인터내셔널’ 노베사와 마사유키(延澤正幸·60) 사장. 빅터, 온쿄 등 오디오전문회사에서 30여 년간 판매를 담당해 온 그는 작년 말 1인 오디오 회사를 세웠다. 도쿄 외곽 허름한 아파트 방 한 칸이 침실 겸 사무실이다. ‘초조해 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남의 신세를 지지 말자.’ 자필(自筆)로 벽에 써 붙여 놓은 글이 눈을 끈다.

직장을 그만두기 5년 전부터 그는 휴가 때면 앰프와 스피커 제조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지닌 크리크사(社) 본사가 있는 영국 런던을 찾아 자신이 설계한 오디오 제조를 주문했다.

“소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줄곧 개선을 요구하는 ‘깐깐한 고객’에게 자존심이 상한 크리크는 1년가량 그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크는 ‘세계 최고급 가정용 오디오’를 상품 콘셉트로 내건 그의 진지함에 감동했고 결국 5년 만에 그를 위해 ‘EPOS’란 브랜드를 만들어 주었다.

드디어 오디오 300세트를 실은 배가 영국을 출발한 작년 말 그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창업에 들어간 1200만엔(약 1억2000만원)은 저축 등을 활용해 직접 조달했다. 장부 정리도 PC용 회계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접 한다. 직장에 다닐 때 야간 학원에서 부기 3급 자격증을 따 논 덕분이다.

오랜 준비 끝의 창업이었지만 지난 1년은 힘들었다. 통신판매 등을 통해 제품을 팔며 대형판매점에 납품 가능성을 타진했다. 마침내 지난달 일본 전국에 600여개 점포를 가진 대형유통점 ‘이토요카도’가 그의 ‘작품’을 전시판매하기로 해 그간 고생한 보람이 결실을 보았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요리사만이 식당 하는 파리▼

파리 15구 유네스코 근처에서 이탈리아식당 ‘스완 에 뱅상’을 운영하는 빅토르 티에리(48).

그는 1년 전 이 가게를 인수해 식당 주인이 됐다. 지난 30년간 그의 인생은 식당과 떼어놓을 수 없다. 처음 16년간은 주방 보조에서 출발해 웨이터, 계산원, 주방장 보조 등 허드렛일을 했다.

다음 14년간은 여러 식당에서 수석 주방장 생활을 했다.

티에리씨는 한국의 창업 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요리사 출신이 아닌 사람이 식당을 창업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주인이 요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식당은 결코 좋은 식당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직원 등 근처의 단골손님을 많이 확보한 그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단골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기쁨으로 산다”고 말했다.

파리 샹젤리제 뒷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코셰 디디에(46). 그가 작년에 이곳에 카페를 여는 데는 24년이 걸렸다. 그의 이력서는 ‘24년간 카페 종업원’ 한 줄이 전부다.

디디에씨가 이곳에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고 실제로 문을 여는 데까지는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카페 종업원 시절 인생의 목표가 카페주인이었고 마음속으로 수없는 예행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근처 옷가게나 식당이 돈을 많이 버는 모습을 보면 업종을 변경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럴 일은 결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재미교포 金씨의 옷가게 개업▼

미국의 직장인은 한국과는 달리 각자의 주특기가 있어야만 직장에서 버틸 수 있다. 전문가로서 평가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전공 영역이 생기게 되고 이직이나 창업도 그만큼 쉬워진다.

디자이너로 10년간 의류회사에서 근무했던 재미교포 김모씨(42)는 4년 전 뉴욕 브루클린에 옷가게를 열었다. 창업자금은 7000달러(약 735만원).

처음 1년간은 회사와 옷가게를 겸업했지만 양쪽 어느 쪽도 일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가 됐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옷가게에 전념했다.

개업 직후엔 모든 패션잡지를 꼼꼼하게 보고 잡지에 실리는 업소도 모두 직접 찾아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에 파는지 면밀하게 분석했다. 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어떤 물건이 좋고 나쁜지 곧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떤 점을 배워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2년 전엔 여세를 몰아 맨해튼에도 개업했고 두 달 전에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어퍼웨스트에 또 하나의 점포를 열었다. ‘목’이 중요한 옷가게의 특성상 옷가게 위치를 정하는 데 최소 6개월 이상을 준비했다. 이제는 맨해튼 점포가 패션잡지에 실릴 정도로 가게가 성장했다.

김씨는 “창업 후 6개월간은 은행에서 돈도 빌려주지 않고 공급업자들도 좋은 물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 기간에 자신의 실력으로 실적을 보여 줘야 한다”며 “미국도 한국처럼 자영업 성공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공의 열쇠는 창업 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느냐와 지금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