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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탈북]300만원이면 자유大韓 품에…운명 건 도박

입력 | 2004-11-19 18:36:00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외부의 도움을 받아 탈북을 감행하는 이른바 ‘기획탈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대량 탈북을 유도하고 중국이 탈북자에 대해 강경자세로 돌아서면서 브로커가 개입된 기획탈북이 사회적 관심으로 등장했다.

국내에서는 브로커가 탈북자들을 ‘관리해’ 서방국가 대사관 등으로 진입하는 대량 기획탈북은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과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하다.

기획탈북은 왜 문제가 되고 있을까. 그 세계로 들어가 본다.

▽기획탈북 누가 하나=중국에 체류하면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입국시키는 30대의 브로커 P씨. 그는 여러 차례 탈북자들을 베이징(北京) 주재 외교공관에 진입시킨 베테랑이다. 탈북자 10여명을 외국 공관에 진입시킨 적도 있다.

3년 전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적응하지 못하자 결국 1년 전부터 ‘기획탈북’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직업’인 셈이다.

P씨 같은 탈북자 출신 브로커는 베이징에만 20∼30명이 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P씨는 한국에 들어와 알게 된 탈북자 출신 여성과 2인조로 움직인다. ‘기획탈북’ 브로커들은 단독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2, 3명이 함께 움직인다. 탈북 단위가 최대 44명(10월 29일 캐나다 대사관 진입)일 만큼 대형화됐기 때문이다.

비정부기구(NGO)가 기획탈북을 지원하는 경우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40대 브로커 K씨의 이야기. “무슨 단체들이 인도적 목적으로 기획망명을 시킨다고요. 웃기는 소리예요. 2년 전에는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요. 다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겁니다.”

▽모집=브로커들은 철저하게 인맥만으로 접촉한다.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는 베이징까지 스스로 이동해야 브로커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데리고 나올 경우에는 브로커가 직접 나선다.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동업자에게 휴대전화로 ‘주문’하고, 북한의 동업자는 중국 변방도시까지 탈북자를 안내한다.

평양 쪽에서 1명을 데려오는 비용은 150만∼200만원,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은 보통 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북한의 동업자에게 주는 수고비는 30만원 선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조선족을 동업자로 삼기도 한다.

P씨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 내 탈북자 수는 5만명 정도. “그중 절반이 한국행 희망자라고 해도 일감이 떨어질 염려는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1999년 중국 내 탈북자 수를 1만∼3만명으로 추산한 뒤 더 이상 ‘숫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작전=또 다른 40대 브로커 K씨는 외국 공관에 탈북자 5명 이하만 진입시키는 소규모 작전을 쓴다. 목표(외교공관)를 정하면 사전답사는 기본. 진입 장면은 반드시 캠코더로 찍어놓는다고 했다. 성공하면 화면을 삭제하지만, 실패할 경우 이를 언론에 뿌려 동정여론을 만들기 위해서다.

공관에 진입하려면 별도의 ‘수고비’를 내야 한다. 1인당 300만원 정도가 ‘탈북 업계’의 평균가격이다. 선금을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계약서를 쓰고 한국 입국 후에 받는 경우도 있다. ‘수고비’를 떼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탈북자들이 잠시 거처하는 집세와 교통비, 사다리와 옷가지 등 공관 진입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해도 1인당 250만원 정도의 순이익이 남는다. 공관 경비원을 매수하거나 베이징에서 조선족의 협조를 받을 경우에는 이익이 줄어든다. 1년에 4, 5차례만 ‘작전’에 성공해도 직장생활보다 낫다.

“300만원으로 운명이 바뀌는데 그걸 마다할 탈북자는 없어요. 저는 나쁘게 말하면 브로커고 좋게 말하면 ‘탈북 도우미’인 셈이죠.”

최근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잇따른 공관 기획진입에 중국이 강경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잠수’한 것. 하지만 다음 작업을 위해 ‘고객’을 물색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 루트 막혀… 몽골쪽은 목숨 걸어야▼

이달 초 중국에 4박5일간 탈북자 진상조사를 다녀온 민주노동당은 탈북자 정착금 때문에 브로커에 의한 기획탈북이 부추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탈북자 김모씨는 “몇 달만 벌면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있는데 왜 정착금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탈북자의 외국 공관 대량 진입은 한국 정부가 동남아루트를 차단하면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K씨도 처음에는 동남아루트의 브로커였다.

“올해 7월 탈북자 468명이 일시에 입국한 뒤 그쪽 한국 대사관에 가면 무작정 기다리라고만 해요. 그런데 그 일 이후부터는 단속이 강화돼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요.”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공관 진입을 선택했다.

“몽골 쪽요? 그것도 쉽지 않아요. 철조망을 12개나 넘어야 하거든요. 겨울에 사막에서 길을 잘못 들면 얼어 죽어요.” 공관 진입이 그나마 쉽다는 얘기다.

최근 부쩍 늘어난 대량 공관 진입 사태는 탈북자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차단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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