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으로 촉발된 열린우리당의 내부 갈등에 대해서는 당내에서조차 ‘예견된 사고’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당 지도부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상당수 의원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국보법 폐지에 반대해 온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 소속 의원 가운데 안영근(安泳根) 제2정조위원장 등 일부는 21일에도 때가 되면 당직을 버리겠다는 뜻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 야당이 반발하고 있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처럼 당내 사정까지 복잡하게 꼬이자 국보법 폐지 관철을 다짐해 온 당 지도부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보법 폐지법안을 20일 제출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야당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도 “여론도 살펴야 하고 한나라당과도 협상해야 하는데 법안 내용의 변화는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귀띔하기도 했다.
‘천 대표가 안개모 소속 주요 당직자들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본보 보도가 나간 직후 안병엽(安炳燁) 제4정조위원장도 국회 대표실에서 천 원내대표와 만난 뒤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야당과의 국보법 협상에서 탄력적으로 대응을 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이런 신중한 자세는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국보법 논의의 초기 과정에서부터 당내 의견수렴은 물론 여야간의 시각차를 좁히는 노력을 좀 더 기울였더라면 불필요한 마찰과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21일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야당과의 국보법 협상에서 열린우리당은 더욱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상황이 유리하면 밀어붙이고 불리하다고 물러서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를 갈등과 대립구도 속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큰 민감한 이슈일수록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얘기다. 지금부터라도 열린우리당측의 대승적인 자세를 기대한다.
박민혁 정치부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