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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만두' 방송화면 경찰이 제공

입력 | 2004-06-16 15:31:00

6월 6일자 MBC 보도 화면


한 젊은 사업가를 죽음으로 몰고간 '쓰레기 만두사건'

만두 제조업체 신영문(34) 사장은 자살을 결심한 순간에도 “우리 만두는 절대로 쓰레기가 아닙니다. 제발 믿어주세요”라고 절규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TV에서 본 쓰레기 단무지 장면이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자체 취재보도 한 것처럼 보였던 이 화면은 대부분 경찰이 제공한 것으로, 문제의 쓰레기 장면은 만두소 재료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 모아놓은 진짜 쓰레기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업체 관계자와 인터뷰를 한 사람도 기자가 아닌 경찰이었음이 드러났다.

▽“경찰이 찍어간 쓰레기가 방송에선 만두소 재료로 둔갑?”▽

“쓰레기를 왜 찍습니까?”

“수사상 참고자료로 찍는 겁니다.”

6일자 MBC 보도 화면

단무지 공장 ㅇ사장은 “방송된 화면은 우리공장이 확실하며 지난 5월 경찰이 ‘수사 참고자료’라며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단무지를 찍어간 것”이라고 밝히고 “어떻게 이 화면이 방송에서는 만두소 재료인 것처럼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장을 찾아온 방송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아마 경찰이 제공한 화면에서 필요한 부분만 짜집기 한 것으로 보인다”며 “방송 보도가 지나치게 왜곡 또는 과장돼 매출이 70%이상 떨어졌고 대부분 단무지 공장이 문을 닫아야 될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장에 남아있던 자투리 단무지는 4월말에 모두 폐기했는데, 경찰이 5월 하순에 들이닥쳐 쓰레기장의 썩은 무를 일부러 박스 위에 올려놓고 비디오를 찍었다”면서 “당시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받은 영수증까지 보여줬지만 경찰은 믿지 않고 찍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이 공장을 덮치기 20일전에 이미 식약청에서 단속을 했고 으뜸식품 사장도 도망다닌다는 말이 업계에 나돌았는데, 설사 공장에 썩은 무가 있었다고 해도 그걸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겠느냐”고 덧붙였다.

6일자 MBC 보도 화면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 준비”▽

이와 관련, 한국단무지제조협회는 15일 ‘불량 만두’ 파동에 대한 해명서를 내고 “방송사 보도화면은 경찰이 수사용으로 찍어갔던 것으로 의심된다”며 “방송에 보도된 자투리 무 등은 100% 폐기물 업체에 위탁해 처리하는 쓰레기”라고 주장했다.

이 협회 관계자는 “방송이후 우리가 만두공장에 쓰레기 만두소를 제공한 것으로 지탄받고 있다”면서 “땅에 떨어진 신뢰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잠도 못자고 있다”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문을 닫은 상태고 사장도 도망가 인터뷰 못했다”▽

이에 대해 지난 6일 기사를 보도했던 KBS 기자는 “경찰 발표 후 반론보도를 위해 업체를 찾아가봤지만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고 사장도 도망가 버려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면서 “인터뷰 질문자는 경찰이고 화면도 경찰에서 제공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관련 업체들이 반론보도를 청구했으면 충분히 들어줄 수도 있는 사항인데 방송이 한참 나가던 지난주에는 아무 소리 안하다 왜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또 "우리가 방송에 보도한 화면은 으뜸식품이었으며 공장을 방문한 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단무지 공장 ㅇ사장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밝힌 뒤 "KBS는 단무지협회의 주장처럼 경찰이 수사 참고자료라며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단무지를 찍어서 보낸 것을 화면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KBS는 당시 (만두 완제품과 지저분한 상자에 담겨져 있는 단무지 조각들을 화면으로 비춰주며)

기자 : 시중에서 팔리는 완제품 만두입니다. 이 만두 속 재료로 썩거나 상한 무, 그리고 무 찌꺼기가 사용됐습니다.

( ) : 저렇게 더러운 걸 사람이 먹을 수 있어요?

ㅇ식품 직원 : 저걸 스팀(증기)에다 정제 처리하면…

라며 인터뷰 장면을 방영했다.

MBC도 같은 날 뉴스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무지 조각과 자투리들을 방송 화면으로 내보냈다.

MBC의 기자는 “방영된 화면은 경찰 것과 방송3사가 공동으로 찍은 것을 편집한 것이다”면서 “그러나 경찰로부터 테이프를 받으면서 쓰레기를 찍은 모습이 들어있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 역시 “공장 관계자의 인터뷰는 우리가 직접 한 것이 아니고 경찰에서 준 테이프에서 따서 썼다”고 말했다.

▽“수사를 위해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방송사에 제공했다”▽

이에 대해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를 위한 자료로 공장모습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방송3사에 제공하기는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제공한 것들이 방송에 그대로 나왔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는 과정에서 방송사로부터 비디오테이프를 참고자료로 쓰겠다는 요청도 있었고 수사내용을 이해해달라는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제공하게 됐다”면서 “테이프에는 공장의 모습과 전체 제조공정, 직원들의 진술 등 수사 자료가 담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부러 쓰레기를 찍었다'는 단무지 업체의 주장에 대해 "업체에서 '찍지 말라'는 말을 들었으나 '수사는 모두 끝났고 확인 차원일 뿐'이라고 동의를 얻은 뒤 찍었다"며 "전체 작업공정을 차례로 화면에 담은 것을 방송사에 제공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뉴스를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 청장 "식약청 조사 무리했다"▽

한편 심창구 식약청장은 15일 “‘불량만두’와 관련한 식약청 조사결과 발표가 무리였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심 청장은 이날 열린우리당 복지위 배정 의원들에게 업무를 보고하면서 “만두조사 결과 발표는 사실 여론에 떠밀려 한 것임을 솔직히 고백한다”며 “한강에 투신한 업체 사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 청장은 “식약청이 보다 당당하려면 아무리 여론에 떠밀렸어도 조사가 철저히 끝날 때까지 버텼어야 한다”고 말해 조사에 무리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심 청장의 발언은 발표가 조금 늦어졌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진상을 완전하게 조사한 뒤 발표했어야 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들, "만두 먹고 탈났다" 신고 잇따라▽

이와 별도로 이번주들어 소비자 관련단체에는 ‘불량만두’를 먹고 탈이 났다는 등의 소비자 피해 신고가 하루 수십건씩 접수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신고가 계속 들어오자 시민단체는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모아 생산업체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진행키로 했다.

지난 12일 대구지역 만두 제조업체·판매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2억7000만원 손배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단무지제조업자들의 방송사 상대 손배소송, 소비자들의 생산업체 상대 집단소송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불량만두’파동의 책임과 진실은 물고 물리는 소송으로 법정에서나 가려질 것 같다.

▽‘불량만두’파동 사건 일지▽

2월 22일 외사범죄수사대 박모경사, 파주 ㅇ식품 공장서 불량만두 단서 포착

3월 9일 박경사, 파주시청 관계자와 ㅇ 식품 공장 다시 찾음

4월 19일 경찰, ㅇ 식품 대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이씨 도주)

4월 27일 경찰, 경찰청출입기자단에 엠바고 요청

5월 4-7일 식약청, 단무지와 무말랭이 제조업소 점검

5월 19일 식약청, 경찰청에 수사 의뢰

5월 19-20일 경찰, 단무지 공장 카메라 촬영

6월 1일 경찰, ㅎ식품 김 사장과 ㅁ식품 손 사장 등에 구속영장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

6월 6일 경찰, 언론에 '불량 만두' 사건 전모 발표

6월 10일 식약청, 비난여론에 불량만두 제조업체 명단 공개

6월 11일 취영루, 불량만두 무혐의

6월 13일 비전푸드 신영문 대표 한강 투신

6월 15일 심창구 식약청장, 만두조사 졸속 시인

6월 15일 동일냉동식품·㈜금흥식품, 불량만두 무혐의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