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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바삐 추리할때 ‘재미’ 느낀다

입력 | 2004-06-08 18:13:00


‘지네가 내기에 져서 심부름을 갔다. 한참이 지나도 지네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어떤 문장이 올 때 가장 재미가 있을까?

①지네의 걸음이 워낙 느렸다. ②지네는 스물세 번째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 ③지네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단순한 유머 퀴즈 같은 이 이야기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재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낄 때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는 연구에 쓰인 예다. 또 이런 연구로 재미있게 공부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다.

고려대 교육학과 김성일 교수(심리학 박사·사진)는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공동 연구팀이 1년여의 연구 끝에 글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 뇌의 반응 영역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팀은 대학생 자원자 10명의 뇌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영상으로 찍었다.


인지적 재미는 이공계 공부를 하는 데 중요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추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계속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영재과학고 학생들이 재미있게 토론하는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네의 걸음이 워낙 느렸다는 내용은 재미가 없다.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선 기대했던 보상이 적을 때 반응하는 영역인 전대상회 뒷부분이 활성화됐다.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문장이 제시되자 재미도 떨어지고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 것이다.

지네는 스물세 번째 신발 끈을 묶고 있었다는 내용과 지네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는 내용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사실 재미에는 인지적 재미와 정서적 재미의 2종류가 있다. 예상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며 놀랄 때 이를 추리로 설명할 수 있으면 만족감을 느끼는데 이 느낌이 인지적 재미다. ②가 추리로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경우다.

반면 단순하게 어떤 상황을 떠올리며 ‘낄낄’거리게 되는 재미가 정서적 재미다. ③은 지네가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다.

연구팀은 인지적 재미와 정서적 재미를 느끼는 경우에도 서로 다른 뇌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알아냈다.

②의 문장에 실험 참가자들의 뇌에서는 측두엽과 두정엽이 만나는 부분과 우측 전두엽이 격렬히 반응했다. 측두엽과 두정엽이 만나는 부분은 예상과 다른 정보를 찾아내고 우측 전두엽은 추론을 통해 일치하지 않는 간격을 적절하게 메우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지적 재미를 가져온다. 다리가 많은 지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신발을 여러 켤레 신어야 한다는 예상치 못한 정보와 연결해 추리함으로써 재미를 느낄 수 있다.

③의 문장에는 뇌에서 1차 시각영역과 갈등을 탐지하는 전대상회가 활성화됐다. 이는 마지막 문장이 앞의 두 문장과 논리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대신 마지막 문장에서 구체적 영상을 떠올린다는 의미다. 지네가 어떻게 다리를 꼴지는 모르지만.

재미 연구는 단순히 재미의 본질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 연구와 연결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지 알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인지적 재미를 계속 느끼다 보면 특히 이공계 공부에 대한 동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학습과정에서 예상과 다른 정보를 만났을 때 기존 지식과의 간격을 추리로 채우는 과정에서 인지적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돌리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앞면과 뒷면으로 넘어질 확률이 어떻게 될까. 보통은 5 대 5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7 대 3이라는 사실을 들려 주면 놀라게 된다. 그 이유가 앞뒷면이 안쪽으로 파인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으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된다.

김 교수는 “재미는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니라 공부에 몰두하는 동기가 되고 결국에는 뇌 구조를 변화시켜 학문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만들 것”이라며 “학생들의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학습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핵의학과 강은주 교수는 “이번 연구는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뇌 기반 학습에 장기적 목표를 두고 심리학, 교육학, 의학 전문가가 함께 ‘재미를 느낄 때의 뇌 기능 영상’을 최초로 조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1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국제적 뇌영상학회인 ‘인간 뇌 매핑(HBM)학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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