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어제와 오늘
“수레 속에 앉아 영창(映窓)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1899년 9월 독립신문에 실린 경인선 시승기)
기차는 이 땅에 들어온 첫 근대적 운송수단이다. 초기 기차는 이처럼 그 속도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서울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80리길(33.2km). 잰걸음으로 걸어도 하루 종일 걸리던 그 길을 한 시간 반만에 주파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속도에 대한 느낌은 그야말로 상대적인 것이어서 시속 20km에도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00여년,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철이 개통됐다. 경인선 첫 기차보다 15배 빨라졌다. 아찔할 정도다. ‘속도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왠지 놀라움은 당시만 못한 듯싶다. 왜 그럴까.
20세기 초반의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문명은 앞서 다른 문명과 구분되는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속도다.”
현대인들은 그만큼 빠른 속도에 익숙하다. 최근 ‘느림’에 대한 논의가 사회 전반에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그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운송수단인 고속철의 속도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 단축의 의미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전국이 3시간, 고속철도 시대의 개막’ 보고서에서 고속철 도입의 효과로 △지역 경제 활성화 △시간 중시의 생활 패턴 확산 △부동산 개발 분산 △여행객 증가 △관련 기술 발전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모두 2차적이고 중장기적인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폴 비릴리오는 저서 ‘속도와 정치’에서 “속도는 단어 그 자체의 순수한 의미에서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하게, 개인의 일상에 국한해서 얘기하자면 고속철은 그 속도 덕분에 새마을호를 타던 승객에게 얼마간의 시간을 줄 뿐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철은 2시간40분 걸린다. 새마을호(4시간10분)보다 1시간30분 줄어든다. 산업혁명 이후 시간은 늘 돈으로 환산돼 왔다. 고속철이 가져다 준 1시간30분은 한국 임금 노동자의 평균 시급으로 계산하면 1만5000원 정도. 운임이 새마을호보다 25% 비싼 것을 감안하더라도 고속철을 타는 게 남는 장사다.
그러나 속도는 승객에게서 창밖의 풍광을 앗아간다. 고속철은 지상을 달리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다. 서울∼목포 구간을 시승했던 주부 최수정씨(33·서울 마포구 도화동)는 “‘기차가 시속 300km로 운행하고 있다’는 열차 내 방송이 나오면서 먼 곳에 있는 산조차 찬찬히 감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 1시간30분
고속철이 창조해낸 시간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기차를 자주 탈수록 시간의 효용을 크게 느낀다. 집이 부산인 최재현씨(46·SK텔레콤 차장)는 2002년 초 충남 천안으로 발령이 나 1년간 매주 기차로 직장과 집을 오갔다. 월요일 기상 시간은 새벽 3시. 씻고 식사하고 4시55분 부산발 서울행 새마을호를 타면 8시반에 천안역에 도착한다. 사무실 자리에 앉으면 오전 8시50분. 최씨는 “단 30분도 아쉬운 시절이었다”라며 “고속철이 있었다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달 두 번씩은 기차로 여행을 떠나는 회사원 이성은씨(27·여)에게 기차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씨는 “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몸이 덜 피곤하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선 고속철이 충분히 제값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도중에 풍경을 즐기려면 아예 승용차를 타고 쉬엄쉬엄 가라”고 충고했다. 반면 일 때문에 가끔 출장을 가거나 일년에 고작 한두 번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고속철의 속도에 시큰둥하다. 1시간30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탑승 시간이 줄고 직장 체류 시간이 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노동 시간만 늘어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속도와 시간, 그리고 행복
빠른 속도는 근대화의 상징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던 1970년 7월7일 언론은 일제히 “번영과 근대화의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적었다. 21세기 한국엔 시속 300km로 달리는 기차가 등장했고 광속(光速)을 자랑하는 인터넷이 일상화됐다. 슬로비족, 다운시프트족, 웰빙족…. 최근 몇 년간 새로 등장한 ‘족(族)’들은 모두 느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끝내는 게 미덕인 시대에 느림에 대한 동경은 보는 눈에 따라 일탈일 수도,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느림의 철학자’인 피에르 상소는 “경쟁과 정복은 현대 서양의 발전 모델”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외부에서 강요된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는 게 느림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이 시대의 낭만주의자들은 속도가 앗아간 그리움을 안타까워할 만하다. 고속철과 속도 경쟁에서 패배한 기차들은 사라지거나 운행 간격이 조절됐다. 통일호는 50년 만에 사라졌고 서울과 의정부를 오가던 교외선도 퇴출됐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고속철에 밀려 운행 편수가 줄었다. 어느 시인처럼 ‘죽도록 그리울 때 기차를 타던’ 사람들은 고속철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빠름과 여유로움, 효율성과 그리움의 온전한 공존은 정녕 이룰 수 없는 꿈인가.
글=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모델=JW메리어트서울 호텔의 양승훈, 이효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