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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함인희/輿論 女論 餘論

입력 | 2004-03-30 18:59:00


4·15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여론조사가 한창이다. 결과는 열린우리당 후보의 초강세, 한나라당 후보의 열세, 민주당 후보의 추락으로 모아지고 있고 이는 탄핵정국의 역풍 ‘탓’ 혹은 ‘덕분’이란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다.

여론조사를 접할 때마다 대학 시절 사회통계 수업 첫 시간에 들려주신 교수님의 금언이 생각난다. “숫자에 관한 한 지나친 맹신도, 지나친 불신도 경계할 것. 더불어 ‘조사 내용과 기법이 허접스러우면 결과도 허접스럽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을 명심할 것.”

▼넘치는 여론조사에도 궁금증 여전 ▼

얼마 전 리서치회사에 근무하는 제자로부터 재미난 경험담을 들었다. 휴대전화 기능 요구도 조사를 의뢰 받아 서울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휴대전화 기능을 적어 달라”는 설문을 하고 보니, 대다수가 ‘도서관정보 검색 기능’이란 ‘정답’을 적어냈다고 한다. 방법을 달리해서 대학생의 하루를 ‘참여관찰’한 다음, 이번엔 직접 얼굴을 맞대고 물어보니 가장 원하는 기능은 ‘애인 위치 추적 기능’이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여론조사란 것이 거액의 자금과 만만치 않은 인력을 요하는 작업이요, 과거 출구조사의 악몽을 잊을 수 없는 조사기관에서 결과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높이기 위한 노하우를 착실히 축적해 왔음 또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대동소이한 조사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사회적 차원의 자원 낭비가 적지 않으리란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여론조사의 소모성에 대한 우려는, 결과가 나온 후 오히려 더욱 많은 궁금증이 고개를 들 때면 현실로 다가오곤 한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이 20%에도 못 미치고 70%의 압도적 다수가 탄핵을 반대한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무슨 이유로 반대하고 어떤 근거로 찬성하는지 ‘보통사람들’의 속내가 진정 궁금하다. 탄핵 반대가 곧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 표명인지도 궁금하고, 탄핵 변수 단지 하나만으로 지지 후보에 대한 여론이 요동을 치는 건지도 정말 궁금하다. 유권자들은 영화흥행이 입소문을 타듯 여론조사 결과에 직접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하여 자신의 지지 후보를 흔쾌히 바꾸었는지도 알고 싶다.

궁금한 건 또 있다. 위기의 한나라당은 그 타결책의 하나로 헌정 사상 두 번째의 여성 당 대표를 탄생시켰고, 사면초가의 민주당 역시 선거대책위원장이란 막중한 임무를 40대 중반 여성의 어깨 위에 맡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뿐인가. 지금 3개 정당의 대변인으론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여성들이 맹활약 중이다. 지금까지 철저히 여성금지구역으로 남아 있던 문이 갑자기 열린 이면에는 획기적 변화에 대한 갈망과 절박한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한데 이들 여성의 상징성이 총선 과정에서 진정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인지 여간 궁금하지 않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효과’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데, 열린우리당에선 별것 아니라고 한단다. 여성 유권자들이 표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결집해 표출하는 이른바 ‘젠더 정치’가 이번 총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여성대표의 등장이 단순히 9회 말 2사 후 구원투수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인지 아직 판단하기엔 시기상조일 것이나 모든 여론조사가 어느 후보를 찍을 것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선, 궁금증은 그대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다.

▼‘여성정치’ 어떤 모습 드러낼까 ▼

앞으로 총선까지는 보름여의 기간이 남아 있다. 라이벌 국가 대항 축구경기, 후반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이 확연히 달라지듯, ‘보름이나’ 남은 정당도 있을 테고 ‘보름밖에’ 남지 않은 후보도 있을 것이다. 누구의 시간이 가장 더디게 흐르고 있을지, 하릴없이 이도 궁금하다. 국민이야 하루빨리 총선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 아닐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