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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최서면씨, “연내 ‘독도는 한국땅’ 자료로 입증”

입력 | 2004-02-03 18:11:00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흥분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구상에서 나 혼자만 역사의 진실을 접하는 기쁨을 누렸지요.”

최서면(崔書勉·76)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은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를 보자마자 대뜸 ‘일본 외무성 소장 한국관계사료 목록’에서 읽어낸 새로운 사실들을 뚜르르 꿸 만큼 한일근세사에 푹 빠져 있었다. 고종이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뒤에도 강화도조약 등 대한제국 말기 외국과 맺은 조약문들을 일본에 내주지 않고 숨겼다는 사실에서 ‘고종의 국권회복 의지’를 읽는 식이다.

최 이사장은 장덕수(張德秀) 선생 암살범으로 지목돼 유죄선고를 받았고, 장면(張勉) 박사에게 ‘친구 김대중(金大中)’을 소개한 당사자다. 당대의 한일 거물급 정치인들과 교분을 유지하며 막후에서 외교와 정치를 요리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이름 앞에 일본에서는 꼭 ‘한일외교의 괴물(怪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국내에서도 한일관계사 연구에서 그가 남긴 족적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크고도 뚜렷하다.

사료에 근거한 그의 연구결과 앞에서는 내로라하는 한국과 일본의 사학자들도 손을 든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상을 일본의 저명 작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에게 알려 일본인들도 소설을 통해 그 실상을 알도록 했고, 1969년에는 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의 활약상을 기록한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 발견했다. 그가 1988년 서울 역삼동에 설립한 국제한국연구원에는 한국 관련 희귀자료 20여만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대부분 일본에서 19년간 한국연구원을 운영하며 축적한 것들로서, 특히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 한국의 고지도 400여점은 그의 자랑이다.

최근 펴낸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관계사료 목록’(국사편찬위원회 간)은 그가 1994년부터 10년 가까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찾아낸 한국 관련 자료목록의 결정체다.

“일본 외무성 사료를 일별할 수 있는 통로로는 이미 외무성 스스로 펴낸 목록과 미국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체크리스트’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긴 한국 관련 부분이 많이 빠져 있어요. 가령 ‘불령단(不逞團)사건’이란 제하에 묶인 조선독립운동 자료는 이 두 목록집에는 전혀 들어있질 않아요. 또 제목만으론 내용을 알 수 없는 한국 관계 자료도 적지 않았죠.”

5만 책(상자) 분량의 사료를 읽으며 그는 우리 민족사의 ‘빛’뿐 아니라 ‘그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료 곳곳에서 항일의 흔적 못지않게 친일과 부역의 흔적도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독립운동가라고 훈장까지 받은 인물의 부역 기록도 있죠. 하지만 부끄러운 것도 그것대로 우리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의 본명은 최중하(崔重夏). 연희전문 문과 시절 김구(金九) 선생의 한독당 산하 대한학생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1948년 2월 4일 당시 한민당을 창당했던 장덕수(張德秀) 살해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그는 이름을 최서면으로 바꾼다. “이시영 당시 부통령이 열심히 공부하라(書勉)는 뜻의 새 이름을 지어 화선지에 써서 감방으로 보냈습니다.”

1949년 10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그는 19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해 보육원 ‘성(聖) 방지거의 집’을 운영하다가 노기남(盧基南) 주교에게서 “교구 본부에서 총무원 사무국장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는 노 주교뿐 아니라 서울교구 사무총장인 장면 박사와의 교분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일본과 인연을 맺는 계기는 1957년 찾아왔다. 이승만 정권이 그를 6·25전쟁 중 탈옥한 사람으로 몰아 체포하려 하자 그는 노 주교의 주선으로 미 군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뒤 일본 고위 인사의 신원보증으로 자수해 특별 체류허가를 받고 꼬박 5년간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자료에 파묻혀 한국학 연구를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지금 그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안중근 평전’과 ‘회고록’ 집필에 전념하는 한편 독도문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한일 양국이 너무 자기 주장에만 치중합니다. 주장보다 상대를 설복시킬 수 있는 사실과 논리가 필요하죠. 올해 안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하는 자료를 내놓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최서면씨 약력

△1928년 강원 원주 생 △1945년 연희전문 정치과 입학 △1975년 충남대 대학원 문학박사 △1990년 단국대 명예 문학박사 △1949년 대동신문 기자 △1951년 ‘성(聖) 방지거의 집’ 원장 △1957년 도일(渡日) △1960년 일본 아세아대 교수 △1969년 일본 도쿄한국연구원 원장 △1988년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현재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 한국몽골친선협회 회장 △저서 ‘안중근 사료’ ‘7년전쟁’ ‘몽골기행’ ‘새로 쓴 안중근 의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