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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현진/'유령株' 대책 때늦은 법석

입력 | 2004-01-09 18:34:00


최근 금융감독 당국의 움직임을 보면 갈이천정(渴而穿井)이라는 고사성어가 자주 떠오른다.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일을 당해야 대응에 나서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올해 들어 ‘유령 주식’과 ‘유령 계좌’에 시달려 온 감독 당국이 후속 조치 마련에 분주하다. 기업이 돈을 넣지도 않고 발행한 ‘유령 주식’을 차단하기 위해 증권거래소 등이 기업의 거래은행에 자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동안 이 정도의 기초적인 ‘확인 장치’도 없었다는 뜻이어서 씁쓸하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SK글로벌이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 예금조회서’를 위조해 분식(粉飾)회계를 한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또 그동안 자본금을 넣어 상장 및 등록을 한 뒤 곧바로 자금을 빼가는 ‘가장(假裝) 납입’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 정도의 ‘사고와 징후’가 있었는데도 금융감독 당국은 제대로 ‘허점’을 보완하지 못했다.

심지어 코스닥 기업의 경우 신주(新株)를 발행해 등록할 때 코스닥위원회에 ‘주금(株金) 납입보관증’을 제출하는 규정조차 없다. 최근 적발된 코스닥 기업처럼 맘만 먹으면 자금 납입 없이 증자 공시만 하고 주식을 유통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틈새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뒤늦게 금감원은 코스닥위원회에 규정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감원은 2일 “2001년 이후 자본금을 늘린 상장 및 등록기업을 모두 점검한 결과 더 이상의 ‘허위 납입’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9일 또 다른 사례가 드러났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불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398만건의 잘못된 주민등록번호로 개설된 금융계좌도 창구의 ‘기초적인 확인’만 있었더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정재(李晶載) 금융감독위원장은 신년사 첫머리에서 ‘기본에 충실하자’고 강조했다. 기업에 실제 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일, 계좌주의 주민등록번호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금융회사와 금융감독 당국이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조차 다지지 않고 ‘선진 금융’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