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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신이여, 저들을 보호하소서

입력 | 2003-03-25 18:58:00


이라크전쟁 개전 하루 만인 21일 미 해병대가 기세등등하게 이라크의 국경도시 움카스르에 도착했다. 한 병사가 도시 초입에 있는 건물 옥상으로 뛰어올라가 이라크 국기를 내리고 성조기를 게양했다. 전쟁터에서 승패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첫 승리를 자축한 것이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성조기는 내려지고 예전처럼 이라크 국기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부대 관계자는 “미군이 점령군처럼 비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조기를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이라크전을 총지휘하고 있는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사령관은 “한 해병대원이 젊은이의 열정을 과도하게 표현했다”는 말까지 했다.

이 삽화에 이라크전의 성격이 담겨 있다. 미국은 이겨도 이겼다고 외칠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내놓고 승리를 자랑할 수 없으니 전쟁에 반대하는 우방들을 설득하겠다며 내놓은 논리는 군색하기만 하다.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대, 약자인 이라크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 있는 반전 물결의 확산을 저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전쟁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이다. 미군이 됐건 이라크인이 됐건 하루하루 늘어나는 희생은,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비보일 뿐이지 결코 박수로 맞아야 할 전과는 아니다. 그러나 전쟁에는 심판이 없다. 전필승 공필취(戰必勝 功必取)가 동양의 전쟁에만 해당되는 신념은 아닐 것이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돌입한 미국과 이라크가 무고한 살상을 자제하라는 호소를 무겁게 생각할 리도 없다. 그렇지만 무지막지한 살상무기 앞에 하나둘 스러지는 사람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병사와 무기를 전장으로 내몰기 위해 신(神)까지 동원해 전쟁을 치장하고 있다. 자신들의 싸움을 신의 싸움으로 돌리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 시작을 알리며 “신이여, 미국에 축복을 내리소서”라는 기원으로 연설을 맺었다. 거의 매일 기독교 복음주의 묵상집(주님께 나의 최고의 것을)을 읽으며 일과를 시작하는 그의 기도를 형식적인 것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탄(악)’과의 싸움을 시작했으니 도와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5일간 미국의 집중 공격을 받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24일 신을 의지해 반격을 했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기독교는 흔히 사랑의 종교라고 불린다. 예수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이슬람 교도들도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구호는 터무니없는 왜곡이라며 이슬람교 역시 평화의 종교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부시와 후세인은 종교를 오용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부시와 후세인이 믿는 성경과 코란에 따르면 그들은 똑같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부시는 바로 아브라함의 고향인 이라크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부시의 하나님이나 후세인의 알라가 기도를 들어줄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세속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러나 어떤 신을 향해서라도 애원하고 싶다. 신이여, 미국인 이라크인 가리지 말고 저들을 보호하소서.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