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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태권도 가르치며 한국의 情도 심었죠"

입력 | 2003-02-02 18:37:00

오타와=박혜윤기자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은 리 태권도 스쿨’을 운영하는 이태은 (李泰恩·61)원장. 그는 이 곳에서 ‘주류사회에 진입한 한국인’으로 꼽힌다.

1977년 오타와에 첫 태권도장을 연 그는 지금 캐나다 전역에서 72개의 도장을 운영할 만큼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영국 왕실에서 주는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메달을, 올 1월 중순에는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주캐나다대사관을 통해 전달받았다. 심지어 오타와시는 지난해 5월 마지막 주를 ‘이태은 주간’으로 정했고 장 크레티앵 총리가 이씨에게서 승단심사를 받고 명예 8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오늘에 이른 길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이끈 힘은 ‘정’과 ‘의리’ 같은 한국적 가치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처음 ‘태권도’라는 한글 간판을 달았을 때 새로 생긴 중국음식점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당시 캐나다인들은 동양 무술이라면 일본 가라테만 알고 있었거든요.”

‘가라테’ 간판을 내걸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태권도’ 간판을 고집했다. 결국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선 그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것은 77년 당시 총선에 출마한 로이드 프랜시스 후보의 선거벽보 붙이기였다. 무작정 자원봉사를 시작했지만 선거결과 프랜시스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마치 연극이 끝난 것처럼 모두 후보를 떠났지만 이씨는 ‘한국적 의리’로 그의 곁을 지켰다.

2년 뒤, 프랜시스 후보는 총선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의리’는 늦게나마 보상받았다. “지구당 대의원에 당선됐고 프랜시스 의원의 소개로 많은 정치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주류사회 한 가운데로 성큼 들어가게 된 거죠.”

캐나다 사회에서 ‘성공’이란 단순히 돈이나 권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이씨도 장애아동들에 대한 태권도 무료 강습 등 활발한 봉사와 기부활동으로 더욱 유명하다. 자원봉사도 순전히 우연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적 ‘정’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이곳에서 나를 알리고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영어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타와=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