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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소외된 사람들 찾아 무료 국악공연 조공자씨

입력 | 2002-11-03 18:11:00

아들 박충훈씨가 한 장애인단체의 교사 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서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는 조공자씨. - 전영한기자


“살아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더라면….”

자동차부품 도매업을 하는 조공자(曺恭子·58)씨는 남편과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어머니. 그러나 9년 전 비행기 사고로 숨진 둘째아들(박충훈·朴忠勳·당시 26세·대위)의 뜻을 이어받아 그동안 봉사활동을 벌여온 ‘강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전투기 조종사이던 충훈씨가 서해상공에서 추락사고로 숨진 것은94년 5월. 이름 그대로 세 아들 중 유달리 조국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둘째아들의 사망 소식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결혼이 5개월도 채 안 남았는데…. 장가가면 둘이서 효도하겠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슬픔에만 잠겨 있던 어머니의 인생은 유품 정리를 위해 부대 내 아들 방을 찾은 순간 바뀌기 시작했다. 침대 밑에서 편지가 가득 쌓인 상자를 발견했던 것.

10여년간이나 광주(光州)의 한 장애인 단체를 남몰래 도와 왔던 아들에게 이 단체 어린이들과 교사들이 그동안 보낸 감사의 편지들이었다.

“나 몰래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나 봐요. 후원금도 많이 내고…. 생전에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무슨 기부냐’며 타박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군요.”

때때로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시간이 없어 그러니 이 돈 좀 여기 적힌 계좌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아들. 단돈 2만원에 불과한 액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 못마땅해했다고 조씨는 말했다.

“10여 년이나 해온 줄은 몰랐죠. 그저 한두 번 하나 보다 했는데….”

엄마의 투정에 “몸이 성한 우리들이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느냐”고 의젓하게 말하던 아들. 그 뒤 조씨는 말없는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사랑터’라는 봉사단체에 가입해 수도권 의 노인정, 보육원, 무의탁 복지시설 등을 찾아다니며 지금까지 수백 차례 무료 국악 자선공연을 펼쳐왔다. 또 일요일이면 영업상 소유한 승합차를 이용해 보행이 불편한 노인들을 성당까지 모시기도 한다.

공연에 필요한 북과 장구 등 악기는 그가 자비로 마련한 것들이다. 시골 두레패에서 상쇠를 했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끼’가 있던 조씨는 더 실력을 닦기 위해 구민회관에서 강습까지 받고 무대에 나섰다. 여기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현재 ‘사랑터’ 회원들이다. 강습 도중 틈틈이 그가 ‘포섭’한 회원들이다. 더 나은 공연을 위해 아예 회원들로 사물놀이패까지 결성했다.

“의사소통도 잘 못하는 장애인들이 공연을 보며 흥에 겨워 어떻게든 어깨를 들썩이는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주말 대부분을 자선공연에 바치는 그는 요즘 평일에도 정신없이 바쁘다. 매주 월요일 오전과 화요일 저녁 자신이 사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 지역의 학생과 주부들을 위해 국악 강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는 줄을 전에는 몰랐어요. 나 사느라 바빴지요. 아들이 제게 가르쳐준 또 하나의 인생…. 함께 하진 못해도 하늘에 있는 애가 웃어줄 것을 생각하니 전혀 힘들지 않아요.”

취재 말미에 아들의 사진을 꺼내든 그는 “엄마가 자랑스러운지 아들이 언제나 웃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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