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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100세 ABC]갱년기 여성 우울증

입력 | 2002-08-25 17:29:00

폐경을 전후해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가족관계가 달라지면 갱년기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정신과 치료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고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주부 이모씨(52·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우울하다. 성공한 사업가 남편에 잘 키워 결혼시킨 아들 딸이 있지만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두 아이를 정성을 다해 키웠고 남편에게도 항상 완벽한 아내였다. 그러나 이제 남편이 싫어진다. “남편이 성공하면 뭐해요, 내가 아무 것도 아닌데….”》

폐경을 전후한 40, 50대에 이처럼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이 많다. 공들여 키운 자식은 곁을 떠나고 남편과도 서먹서먹해진다. 인생무상을 느끼는 모습이 빈 둥지에 남겨진 어미새와 같다 해서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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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원래 우울증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병. 인구의 10%가 일생에 한 번은 우울증을 경험하며 여성은 4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겪는다. 특히 폐경기에는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땀이 나는 갱년기 증상이 생기는 데다가 자식, 남편과의 관계도 예전과는 달라져 외로움을 더 타고 우울해진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사람, 자식을 기르는 데 힘을 쏟은 사람에게 빈번히 나타난다.

▽정신과 치료〓우울증은 주로 약물로 치료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지만 뇌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이 있기에 약물치료가 효과적이다. 흔히 정신과 약은 독해서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중독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 사용되는 항우울제는 대부분 중독성이나 습관성이 없다. 항우울제를 복용해 금방 효과를 보았더라도 약을 바로 끊지 않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은 재발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며 6개월 이내에 약을 끊으면 재발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우울증에 심리적 요인이 크다면 약물치료 외에 의사와 상담을 통해 성격이나 사고 유형 분석에 의한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생활방식 변화가 필요〓일생을 가족을 위해 참고 살아 온 중년 여성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데 익숙해 있다. 감정을 쌓아두는 것은 우울증으로 가는 지름길이나 마찬가지다. 정신과 의사나 남편, 친구 등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끝까지’ 참는 것도 문제지만 우울함을 핑계로 자신의 문제를 밖으로 돌리는 것도 큰 일이다. 주부들이 뒤늦게 인터넷 채팅에 중독된다든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이때 흔히 남의 탓을 하면서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남편 때문에’ ‘애들 때문에’란 생각을 버리고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자식에게 의존하는 것은 금물. 자식을 사랑한다 해도 성장한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자식보다는 남편과의 관계에 신경쓰는 것이 좋다. 대화를 자주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대화를 하려면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부부가 함께 등산을 가거나 테니스를 치는 등 공통의 취미를 만들어 남편과 함께 ‘빈 둥지’를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

▼‘빈둥지 증후군’호르몬요법-성기능장애 치료 큰 효과▼

폐경 이후 나타나기도 하는 우울증 치료에는 호르몬제가 효과가 있다. 보통 자궁이 없는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을 쓰고 자궁이 있는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테론의 혼합요법을 쓴다.

얼마 전 미국 국립보건원은 폐경 뒤 호르몬 치료가 유방암과 뇌졸중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폐경학회는 “이번 결과는 한가지 종류의 약품(프렘프로)에 대한 조사이므로 의사와 상의한 뒤 계속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치료 목적이 ‘폐경기 증상 완화’라면 호르몬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며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심혈관질환이 있는 사람은 호르몬 치료를 피해야 한다.

성기능 장애를 치료하는 것도 우울증에 큰 도움이 된다.

여성의 성기능 장애로는 △성욕 상실 △성관계시 느낌이 없는 것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것 △성관계시 통증 등이 있다. 이 같은 성기능 장애에는 획기적인 치료제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주로 호르몬 치료를 하는데 폐경 전 여성에게는 약한 남성호르몬을 투여하면 성욕이 증가하기도 한다. 폐경 후에는 여성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을 같이 투여한다. 또 성관계시 혈관확장제가 들어 있는 젤 종류를 사용하면 통증이나 불감증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부부간 성관계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부부가 함께 적극 치료해야 중년 이후에 즐겁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충고한다.

(도움말〓성균관대 의대 비뇨기과 이성원, 내분비내과 민용기 교수)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