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우리 손자 만홍(7) 만우(6)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김포에 오는 날이랍니다. 두 녀석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오느냐고요? 글쎄요…^^.
둘은 제 PC방에 들어오자 마자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고 바로 PC 앞에 가서 앉는답니다. 집에서는 부모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못하는 게임을 할머니 할아버지 핑계 대고 신나게 하는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들이 내심 서운하시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처럼 게임 하세요. 저희가 가르쳐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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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이 아무리 살갑게 굴어도 할아버지는 “나는 싫다∼, 씻으러나 가자”하시며 저 보란 듯이 애들을 데리고 대중 목욕탕에 가신답니다. 호호, 그건 제가 못 하는 일이거든요.
목욕은 목욕일 뿐, 밤 새워 때를 밀 수 있나요?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면 만홍 만우는 다시 게임에 매달립니다. 게임을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제게 훈수를 구하기도 하고, 몬스터를 물리치고 자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할머니가 대신 나서서 실력 발휘를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할머니여서 좋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잘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할머니를 더욱 대접해 주는 게 아닌가….
어느 토요일이었어요. 동생 만우가 제게 달려오더니 “할머니, 형아 울어요” 그러는 겁니다. 깜짝 놀라 울고 있는 만홍에게 달려갔지요. 게임 화면을 봤더니, 아 글쎄, 레벨이 700쯤 되는 캐릭터가 300밖에 안 되는 만홍의 캐릭터를 자꾸만 때려서 기절시키고 있는 것이었어요. 제가 채팅으로 물었죠.
“님∼, 왜 자꾸 제 손자 때리세요?”
“네가 내가 다 잡은 몬스터 가로챘잖아.”
“아이들이 실수한 것인데, 한번 용서해 주세요. 저 ‘아이부끄러워’인데요, 저 아시죠?”
“네가 그 할머니 ‘아이부끄러워’면 난 조지 부시다. 까불지 마.”
안 되겠다 싶어 제 ID로 로그인을 하고 최고 레벨 1000인 제 캐릭터를 앞세워 그 사람 앞으로 갔어요. 그랬더니, “애들인지 정말 몰랐어요.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줄행랑치더군요.
저 그 날 손자들에게 점수 땄답니다.
“할머니 짱!”
“얘들아, 게임에서 무슨 일 있으면 꼭 이 할머니한테 얘기해라, 응?”
만홍의 눈가엔 눈물 대신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레벨▼
온라인 게임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 대개 계급이나 숫자로 표시하며 레벨이 높을수록 캐릭터의 힘이 세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