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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는 책]서지문 '현대윤리학에 관한…'

입력 | 2001-06-08 18:45:00


◇ '현대 윤리학에 관한 15가지 물음'

과학이 생명창조의 능력을 인간의 손에 쥐어주려고 하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개헌논의에만 정신이 팔려 방치하고 있는가 했더니, 드디어 법안을 만들기는 했는데 윤리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를 억제하는 쪽으로 기운 내용이다.

고급두뇌들이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대거 떠날 것이 걱정스럽고, 만약 이 법안이 통과 시행된 후 금지조항을 어기고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발견이 나온다면 연구자를 어떻게 할지 의문스럽다.

◆ 기술과 현실의 충돌문제 고민

‘현대 윤리학에 관한 15가지 물음’ (가토 히사다케 지음·표재명 김일방 이승연 옮김·서광사·2000년)은 예전의 원칙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한 현대의 윤리학적 고민에 대응하는 새 원칙을 모색하는 책이다.

처음 12가지 물음은 근대 서구윤리학의 근간이 된 칸트의 정언명법과 벤담의 공리주의 원칙이 현실상황에서 적용될 때 당면하게 되는 무수한 모순과 딜레마들을 살펴보고, 마지막 세 장은 현대과학의 위험요소와 환경문제가 야기하는 윤리적 숙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마당이다.

저자는 윤리학이 현실상황과 타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칸트의 순수형식주의 윤리학, 어떤 행위의 윤리적 평가는 동기와 상관없이 오로지 그 행위의 결과로 얼마나 개인과 사회의 행복이 증진되었는가에 의거해야 한다는 벤담의 공리주의적 신념, 그리고 공리주의를 계승하면서 행복지수의 계산에 ‘쾌락의 질(質)’ 개념을 포함시켜 인간의 품위를 살리려고 했던 죤 스튜어트 밀의 윤리적 열정과 소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훌륭한 신념이 현실적 적용에서 당면하게 되는 의외의 변수와 자기 모순, 가치의 충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환경재앙-생명파괴 대안 찾아

열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에고이즘에 기초한 행위는 모두 도덕에 반하는가? 국민총소득을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소득격차도 확대되는 경제정책이 좋은가, 나쁜가? 자유는 목표인가, 수단인가? 가치에는 실체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교환이 가치를 성립시키는 것인가? 정의의 원리는 순수형식으로 결정되는가, 공동의 이익으로 결정되는가? 절차상의 정의와 내용상의 정의는 다른 것인가? 등 많은 윤리학의 난제가 흥미진진하게 제시되면서, 서구 윤리철학의 고민과 좌절이 드러나기도 한다.

마지막 세 장은 오늘날 우리 앞에 닥친 긴박한 문제인 환경문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빚어지는 대규모 살상, 인간이 과학 기술의 목적에 예속되는 현상, 그리고 과학의 생명성 파괴에 대한 윤리적 법적 대비를 모색한다. 이 책은 윤리가 고리타분한 공론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과 연관이 있으며, 생명의 계승과 우리 후손의 삶을 위해 시급히 논의하고 모색해야 할 문제임을 깊이 각성시킨다.

서지문(고려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