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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機 승무원 조사 ' 배경]中 "공식사과하라" 美 압박전략

입력 | 2001-04-05 19:49:00

미국 지상관측위성 이코노스가 포착한 미 해군 EP3 정찰기 모습


중국이 비상착륙한 미국의 EP3 정찰기 승무원들에 대해 ‘국제법 위반 범죄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힘으로써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정찰기 승무원은 재난을 당해 긴급피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억류상태의 혐의자’라는 뜻을 명백하게 밝힌 것으로 보이기 때문.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조사기간’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중국측은 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유감 표명에도 불구하고 ‘공식 사과 후 정찰기 승무원 추가면담 허용’이라며 미국을 더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또 미국 정찰기와 충돌해 실종된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王偉·32)의 사진을 4일 공개한 데 이어 5일에는 조종사 부인과의 인터뷰 기사를 관영 매체에 게재했다. 국민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이번 사건을 확대해 나가려는 자세다. 미국에 대한 국민의 반감과 불만이 높아지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첨단장비를 갖춘 정찰기와 승무원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은 고자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점점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파월 장관은 4일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건 해결방식에 관한 제안을 담은 서한을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에게 보내며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제까지 취해온 ‘잘못한 일이 없다’는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미국은 1일 사건이 발생한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정찰기와 승무원의 즉각 송환을 요구하는 한편 미 정찰기가 사고 당시 공해 상공에서 정찰활동을 벌였기 때문에 미국이 잘못한 일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나서 미국의 잘못을 규탄하고 미 정찰기의 중국 영공 침범과 무단 착륙,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실종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등 양국이 첨예하게 맞서왔다.

양국 정상이 진두지휘한 이같은 설전(舌戰)은 자국의 명분을 강조하고 대내적으로 상대국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무마하는 측면은 있지만 사태를 푸는 데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을 자처하고 있고 중국도 오랜 역사를 통해 줄곧 대국(大國)으로 행세해온 터라 서로 상대의 일방적인 요구에 맞춰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파월 장관은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대치상황이 더 이상 감정적으로 치닫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위 실무선을 통한 외교적 절충을 모색할 것을 중국측에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이같은 유감표명을 당연한 절차라고 환영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식 사과를 한다면 이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자존심을 구기게 된다. 그렇다고 계속 버티면 승무원 송환은 장기 과제가 될 공산이 크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이 과연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주목된다.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