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가족의 단란했던 한때
동아일보는 지난달 25일 펜실베이니아주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 수감중인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씨의 안타까운 육성을 들었다. 이날 인터뷰는 교도소측의 승인과 감청 하에 김씨가 교도소 내 유료전화를 이용, 오전6시반부터 15분씩 3차례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의 집으로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화는 15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끊어져 김씨는 통화가 끝나면 30분 정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재심청구보다는 사면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을 받았더라면 계속 싸울 수 있었겠지만 이미 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재심 청구가 어렵습니다. 당시엔 마음 속으로 잘못을 느꼈을 뿐 그렇게 큰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담당 판사는 내가 (미국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시민권 선서 내용을 잊고, 내게 주어진 신뢰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통상 수준보다 3,4년 높게 형을 언도했습니다.”
―이번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사면여건 조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건 한국측에 달려 있습니다. 사면 문제를 이슈로 하면 되지요. 미국사람들은 이제 제 사건을 다 잊었을 겁니다. 옆에서 누가 리마인드(상기)시켜줘야 하는데 데모를 한다고 해서 리마인드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한국정부는 김선생이 미국 시민권자라서 도울 수 없다고 합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변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이런 처지에 있지 않고 정부 요직에 있었다면 한국정부는 저보고 한국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도와달라고 했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되고 나니 미국 시민권자라서 도울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것이지요.”
―한국정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저를 풀어주라는 얘기보다는 관심을 갖고 잘 있느냐고 안부만 물어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총리처럼 스파이로 체포된 유대인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대통령과 장관들이 관심만 가져주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를 않아요. 이번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오셔서 제가 잘 있느냐고 미국측에 물어만 봐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를 탄원하는 서한을 한국정부에 보냈는데 김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어요. 대통령으로서 어렵다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개인자격으로라도 형량을 재고해 달라고 부탁해도 보통사람의 이야기와는 달리 들리겠지요.”
―한국정부를 도운 것을 후회합니까.
“후회는 하지 않아요. 이런 것(한국측에 제공한 정보)이 있다는 것을 한국정부에 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우방이라 하더라도 국가간에는 할 얘기와 못할 얘기가 있는데 당시 한미간에는 못할 얘기가 많았던 듯 해요. 미국은 큰 나라여서 지시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미국시민인데도 미국 법을 어기고 한국을 도운 이유는….
“미국 시민이 됐지만 제 조국은 한국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예요. 우리나라가 잘되면 좋지요.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는 첫날 수사관들에게 한미 축구시합이 열리면 나는 한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김선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실무자들끼리 얘기가 돼야 해요. 우선 한국에서 외교적으로 접근하면 좋겠어요. 법무장관이나 실무자끼리 얘기해서 제가 교도소에서 오래 살았으니 내보내자고 한번만 말해줘도 될 것 같아요. 미국인들은 한국인보다 인심이 좋아요. 날 보고는 미국시민이라고 우기지만 그들도 이민의 후손이라서 제 입장을 잘 이해합니다.”
―동아일보 독자와 한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를 동포로 여겨 도와주려고 애쓰시는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제가 한국에 가게 되면 형제로 봐주길 부탁드립니다. 저를 잊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세요.”
김씨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영어 수학 물리 등을 가르치고 빨리 걷기를 하면서 건강을 관리한다고 소개한 뒤 한국인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제게 관심을 보여준 여러분들에게... 국민의 한 명 (울음)...여러분의 형제가... 사심 없이 조국을 돕다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잊지 마시고... 고맙다고 꼭 전해주세요. 그리고 몸도 못 가누고 계신 아버지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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